<뇽>웬만해선겹치는 일이 없다.
알은 아침형 인간이다. 그리고 나는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이다. 우리는 정말 취향부터 생활패턴까지 단 하나도 겹치질 않는다.
9시까지 출근, 회사까지 30분 소요라는 같은 조건을 두고 둘의 행동 패턴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겹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알의 경우 6시 반에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아침식사와 도시락을 싸고 8시 10분쯤 집에서 출발해 8시 3~40분에는 회사에 도착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나는 보통 7시 50분에 일어나고 세수하고 화장하고 아침은 생략하고 8시 20분에 출발해서 8시 50분쯤 도착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알은 6시 반에 씻고, 나는 7시 50분에야 씻으면 다행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같은 조건에서 준비시간이 전혀 다르다.
가는 모발에 지성 두피로 고생하는 알은 매일 아침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반해, 나의 경우 2~3일에 한 번만 감아도 티가 거의 나지 않는 데다, 건성 피부인 탓에 아침 세수는 거의 물세수로만 대체하여 아침에 허비하는 시간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출근용 메이크업도 알은 30분 정도가 소요되고 나의 경우 거의 빈틈없는 루틴이 자리 잡고 있어 15분이면 완료. 이래서 우리는 화장실 사용 시간이 겹치는 일이 거의 없다.
밤에는 또 어떠한가. 나는 얼굴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집에 들어오면 바로 식사를 하고 세수를 하거나,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하는 쪽을 선택하는데 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만큼 저녁엔 기력을 모두 소진하여 약 먹은 병아리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차라리 그냥 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30분만 누워있다가 씻을게"라는 말을 하고 2시간쯤 누워있다가 밤 11시에 씻기 싫다고 울어댄다. 지금 한창 졸린데 씻고 나면 잠이 깨버린다는 것이 그 이유... 피부가 갑갑해서 잠을 설치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긴 하다. 여기서 또 드러나는 사실 하나가 있으니, 저녁엔 내가 먼저 씻고 알이 늦게 씻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웬만해선 화장실 사용 시간이 겹치지 않는다.
저녁에 정신 못 차리는 알은 가히 볼만하다. 아무리 좋아하는 배우가 TV에 나와도, 아무리 웃긴 동영상을 틀어놔도 저녁 10시를 넘긴 시간에 정신을 차리고 바르게 앉아있는 알의 모습은 손에 꼽을 정도로 보기 힘들다. 그런 우리도 브런치 연재를 하며 밤마다 간혹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땐 저녁 급식을 대폭 줄여 식곤증 자체를 차단해야 겨우 가능한 정도다. 알의 식곤증은 심한 편이라 무엇이든 배부르게 먹는 순간 스르륵 정신을 잃는 편인데 그 음식의 카테고리엔 '커피'도 포함되어 있어 따뜻한 커피를 한잔하고 나면 정말 말 그대로 '따뜻하고 배부른' 상태가 되어 더욱 빠르게 잠이 들 지경이니... 뭐, 불면증 보다야 나으니 다행이 아닌가. 거기에 알의 경우 자는 중엔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한창 자는 중에 바로 옆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려도 마치 자장가를 듣는 마냥 하여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라고 하겠다.
또 역시 이에 반해 나의 저녁은 오히려 아주 쌩쌩한 편이라, 씻는 것이 귀찮아 한쪽 구석에서 알이 잠든 사이 -밤 10시쯤-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을 수 있고, 따로 하는 일이 많아 컴퓨터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 알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여기까지 정리해보자면 우리는 서로 상대방이 욕실을 필요로 할 때 주로 잠을 자는 쪽을 선택하기에 화장실이 겹칠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 중 하나는 항상 같은 음식을 먹는 우리가 어쩌다 '배탈'의 주기까지 다를까 하는 점이었다. 아직까지 상한 음식으로 고통받은 적은 없지만 최소 매운 음식을 먹고 탈이 난적은 있는데 둘 다 위장의 움직이는 속도까지 다른 탓인지 화장실이 겹치거나, 하다못해 연거푸 이용한 적도 없으니 신기한 일이다.
일련의 상황을 미루어볼 때 나는 이것 또한 생활 패턴의 차이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침형 인간에 아침마다 사과를 먹는 알은 정기적으로, 규칙적으로 화장실을 가는 편이고, 그때그때 음식을 먹거나 귀찮으면 안 먹고 넘어가는 나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 조차 들쭉날쭉 한 것이다. 사실 성격이나 생활패턴이 이렇게나 다른데 화장실이 겹친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할 일이다.
함께 한지 오래되기도 했고, 여행 등으로 일상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맞춰가는 시간을 가졌더니 우린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궁금해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혹시 같이 살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여행을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전 10시에 숙소에서 출발해야 하는 일정이 있을 때 저마다 준비시간이 다를 것이다. 아침에 되는대로 일어나 '준비가 되면 나가자'라는 헐렁한 계획보다는 '오전 10시 반에 반드시 버스를 타야 한다'라는 치밀한 계획이 있는 여행이라면 저마다 준비시간이 다름을 알게 될 것이고, 그 준비시간에 따라 일어나야 하는 시간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와 전혀 다른 생활패턴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생각해보자. 와, 이 정도면 안 맞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맞는 거 아닐까?라고.
<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