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뇽>너무 잘 맞지.그래서 살찌고.
나는 음식 취향이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한국인 치고는 매운 것을 먹지 못하고, 비린 것도 싫어한다. 오죽하면 회사에서 회식할 때 내 눈치를 보며 회식 장소를 정하는 정도이니 알만하다 하겠다. 고위직들의 희망 사항대로 횟집이라도 가게 되면 숨 쉬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다가 중간에 도망가기도 일쑤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주변인 모두는 우리의 음식 취향이 맞는지를 궁금해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잘 맞는 편이다.
내가 매운 것을 못 먹는 만큼 알은 매운 것을 즐기지 않고, 내가 비린 것을 싫어하는 만큼 알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이게 안 맞았으면 진짜 우리 어쩔뻔했냐고 말하지만, 어쩌면 이런 부분이 잘 맞았기 때문에 친한 친구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식성이 안 맞고 서로 다른 것에 예민한 사이였다면 우리가 과연 지금처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에 비하면 알은 음식을 거의 가리지 않는 편인데 한 가지 가리는 것이 있다면 징그러운 것과 못생긴 것이다. 어렸을 때는 심지어 연근조림도 징그럽다고 싫어했단다. - 반대로 나는 꽃 같아서 좋아했다 - 그 부분에 대한 취향은 나도 비슷한 편이라 같이 페루로 여행을 갔을 때 그 누구도 ‘꾸이(기니피그 통구이)’먹기에 도전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무엇이 되었든 머리가 같이 나오는 요리를 싫어하며 너무 형체가 그대로인 조리 방법도 싫어한다. 어차피 먹을 거면 제발 예쁜 플레이팅을 해줬으면. 물론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끼리 요리해서 밥을 먹을 땐 최대한 예쁘게 세팅해놓고 먹는다.
어렸을 때부터 알의 확고한 취향이 반영된 음식 중 하나는 바로 떡볶이인데, 방금 조리한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떡볶이 판에서 2시간은 끓여서 떡에 완전히 양념이 밴 것을 좋아한다. 어떤 브랜드가 됐든 유명 프랜차이즈가 아니라고 해도 알은 집에서부터 반경 500m 내외에 있는 떡볶이집, 혹은 새로 생긴 떡볶이집은 무조건 가 보는데 내가 있을 땐 같이 먹어보고, 내가 야근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부재중일 땐 혼자서라도 가서 먹어본다. 그것은 알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맛을 찾는 여정이다. 무조건 맵기만 한 것은 금지, 대충 몇 분만 끓인 것 같은 심심한 맛 금지, 물이 너무 많아서 떡이 하얗게 보이는 것 금지 등등 수많은 판별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알의 기준에 부합하는 맛은 대개 ‘초등학교 앞 떡볶이’라고 불리는 고전적인 맛이다. 하지만 그 별칭이 무색하게도 신도시에 사는 우리 주변의 초등학교 인근엔 흔히 상상하는 그 떡볶이집이 없고 - 뿐이냐, 문방구도 없더라 - 있다 하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매운 떡볶이뿐이다. 알은 모든 떡볶이 브랜드를 섭렵했고, 입맛에 맞는 브랜드를 겨우 하나 찾았으니 우리 동네도 아닌 먼 곳에 존재하는 K 브랜드의 떡볶이였다. 그러나 얼마 전 코로나의 영향으로 그 집 마저 폐업을 하였으니 알의 떡볶이를 향한 여정은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치킨에 좀 환장하는 편이다. 알의 말로는 내가 없으면 자신은 치킨 먹을 일이 많지 않다고, 1년에 한두 번쯤 먹었었다고 하는데 한 달에 한두 번 먹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배달 어플이 생겨서 주문 시 전화 통화가 필요 없지만 예전만 해도 치킨 주문을 위해 전화 통화는 필수였는데, 모든 브랜드에서 취향의 치킨을 찾으려는 나의 도전 의식은 마치 입맛에 맞는 떡볶이를 찾으려는 알의 여정 -혹은 열정- 과 비슷하여 집으로 날아오는 모든 치킨집 전단지에 한 번 이상 전화를 걸어보게끔 했다. 덕분에 당시 살던 동네 치킨집들은 모두 내 전화번호에 연결된 집주소를 누적 데이터로 보관하고 있어서, 전화해서 메뉴만 고르면 따로 주소를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는데 이런 절차 역시 배달 어플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편하긴 하지만 단골의 특권을 빼앗긴 듯한 허전함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단골집에 몇 달 만에 전화주문을 넣었을 때 '이사 가신 줄 알았어요' 하는 인사말을 듣는 재미도 날아가버렸으니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취향은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이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일단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이 달라서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경우 기꺼운 마음으로 양보하고, 음식 가지고 감정이 상할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같은 값을 내가 니가 더 먹었니 내가 더 먹었니 할 일도 없거니와 치킨의 선호부위를 니가 먹니 내가 먹니 하는 문제로 다툴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음식 취향으로 구축했던 식탐의 마지노선이 같이 사는 동안 무너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치킨을 먹는 횟수가 손에 꼽히던 알이 나의 잦은 주문으로 한 달에 한두 번은 반드시 치킨을 먹게 되었고, 소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밀가루를 별로 안 좋아하던 나는 어느새 스스로 ‘빵’을 찾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먹다 바로 옆에 있는 이에게 조금씩 권하게 된 탓인지 - 둘 다 그냥 눈앞에 있으니 먹었다 - 거들떠보지도 않던 메뉴에 빠져 결국 우리는 체중의 한계를 시험하는 중이다. 아니, 그보단 ‘와, 내가 이렇게까지 찔 수 있었어?’라며 인간의 한계를 시험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보통 ‘같이 다이어트하면 서로 힘이 되고 좋지 않냐’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운동 취향마저도 확고하게 달라서 다이어트만큼은 함께 하지 못한다. 알은 장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2시간 가까이 돌고 약간의 근력운동을 더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고, 나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안무에 가까운 스트레칭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우리는 함께 운동하기는 힘들고 함께 먹기엔 문제가 없는 이상한 관계라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퇴근 후 직장 상사의 뒷담화로 한층 돈독해지는 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이 빠져서야 되겠는가!
“너 때문에 내가 요즘 떡볶이 먹잖아!”
“너 때문에 내가 치킨 찾잖아!”
음식으로 인한 마찰이라면 이 정도가 전부다. 서로에게 너무 먹여서 문제가 되는 것 정도. 슬기롭고 화목한 (?) 주말을 보내고 난 후 월요일 아침, 우리는 체중계에 올랐다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탓한다. 그리고 각자 하기로 한 운동은 서로가 격려해주지 않고 함께 누워버리는 쪽을 선택한다. 함께 살면서 나타나는 단점에 아마 이 부분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