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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May 14. 2020

잔소리 좀 해주세요

- 잔소리가 그리운 날도 있다


잔소리를 안 하는 방법은 없나요?

잔소리를 좀 효과적으로 할 수 없을까요?

잔소리 안 듣는 방법 어디 없나요?

왜 여자는 남자에게 잔소리를 많이 할까요?

여자들의 잔소리는 무엇으로 막아야 할까요?  

여자들의 잔소리의 끝은 어디일까요?



인터넷의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질문들입니다.

그 중 ‘잔소리 안 듣는 방법 어디 없나요? 와이프가 하는 잔소리 맨날 참고 있긴 하지만 힘드네요.ㅠㅠ’ 하는 질문에 클릭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잔소리하는 부분을 시정하여 더 이상 잔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면 그만입니다. 뭐, 말로는 쉽고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정공법은 역시 이거밖에 없겠죠?”

“그냥 밖에 나가요. 아니면 뽀뽀를 해버려요. 말 못하게.”

“더 잘해주세요. 잘하는데 잔소리하는 와이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와이프 잔소리가 그리울 때도 있을 겁니다.”

“잔소리에 약은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애정 결핍이 되면 여자들은 잔소리 바가지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사랑으로 대하여 주세요.”

“아내의 잔소리대로 해주세요, 여자말 들으면, 손해는 없습니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들입니다.


저도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고 보니 제가 생각해 봐도 온종일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일어나야지! 더 꾸불거리면 지각이야. 옷을 제자리에 벗어두면 아침에 찾기도 좋잖니? 아침밥 먹고 가야지. 당신도 좀 도와줘요. 왜 매일 하는 일인데 매번 말하게 해?”

잔소리로 하루를 엽니다. 어느 집이나 비슷한 풍경일 듯합니다. 잔소리는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이어집니다.

딸과 통화를 하면서도

“일찍 일찍 들어와. 차조심하고.”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밤늦게 운전하면 위험하다, 술자리는 적당히, 사람들 앞에서 말조심하고.... 매일 하는 그 소리가 그 소리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새겨 보세요.

정말 사랑이 없으면 하지 않을 잔소리들입니다. 앞집 남편이나 뒷집 아이의 일이라면 이런 잔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되풀이하진 않겠지요?


대중가요 노랫말에도 이런 게 있더라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니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사랑하다 말거라면 안 할 이야기, 누구보다 너를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  

이런 게 잔소리라고요.


사랑이 없으면 잔소리도 없다는 말이 딱 맞는 말입니다. 가끔은 그 사랑이 너무 넘쳐서 듣는 사람의 짜증을 부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어릴 때 저도 그런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학교 갈 때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 잘 들으라.’ 하시고 밥상머리에서도 ‘꼭꼭 씹어 먹어라,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하시고 ‘차조심하라.’는 말씀도 언제나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어릴 때 엄마에게 들으며 자랐던 그 잔소리를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그 상황, 그 순간엔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 잔소릿거리가 됩니다.

학교생활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밥상머리에선 음식을 골고루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잊기 쉬운 것, 그런 것들이 잔소리의 레퍼토리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보약 같은 잔소리를 해주실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쓸쓸하게도 한 분도 안 계십니다.

 ‘방청소 좀 해라! 동생이랑 싸우지 좀 말고.’ 하시던

그 잔소리가

그리워집니다.


                               부모님이 두고 가신 가장 귀중한 유산 - 팔남매 (2020. 1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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