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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Jul 06. 2020

불멸의 사랑

 -  나야 대령과 비말라 나야 여사의 사랑 이야기

뒷동산을 오른다.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숲이 있다는 건 축복이고 행운이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이사였다.

그것도 30년 된 아파트로...

8년 전, 낯선 이곳에 적응해 나갈 때

큰 위안이 된 첫 번째는 뒷마당에 우뚝 솟은 나무들이었다. 

오래된 아파트이기에 가능한 풍경들이다.

9층 우리집 창가까지 자라

푸른 머리숱을 흔들어 주었고

그곳에 둥지를 튼 새들의 웃음소리는 기대 이상의 덤이었다.


집에서 100미터쯤 거리에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산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하고,

언덕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넘치는...

정식 이름은 '범어공원'이지만

난 그냥 정겹게 '울집 뒷동산'이라고  부른다.

(TMI-동산: 마을 부근이나 집 근처에 있는 낮은 언덕이나 작은 산. 평화롭고 행복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울집 뒷동산 입구에 나야 대령 기념비가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국제연합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파견 온 나야 대령은,

그해 8월 왜관 전선에서 지뢰폭발로 산화(散花)했다. 

당시 고국에는 결혼한 지 3년 된 아내와 두 살 난 딸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 중이라 송환도 어려워 이곳에 화장하여 묻히게 되었다는데,  

이국땅에 쓸쓸히 묻힌 를 찾아 아내 비말라 나야 여사가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단다.

3년이란 짧은 결혼 생활과 어린 딸,  

떠난 지 한 달여만에 들려온 남편의 전사 소식을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를 떠나보내고

51년간을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간 비말라 나야 여사는

2011년 9월 생을 마감하면서

“남편 옆에 묻히고 싶다”는 애틋한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진 출처 : 명품수성 뉴스 제104호. 2012. 8>
<사진 출처 : 명품수성 뉴스 제104호. 2012.8>

                                                       

그녀의 마지막 유언대로

지금 그녀는 남편 곁에 잠들어 있다.

당시 엄마 품 속에 안겨 있었을 두 살짜리 딸은,

얼굴도 기억 못 할 아버지 곁에 어머니의 유골을 안장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기리는 표지판을 자비(自費)로 만들어 세웠다.


50여 년을 그리움으로 살아내고

유골이 되어서야 그의 곁을 찾아온

그녀의 기나긴 사랑의 여로(旅路) 끝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사랑과 그리움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 뚝 그치는  

소낙비같은 사랑이 넘치는 이 시대에,

일회용 물건처럼 사람도 쉽게 만나고 쉽게 버리는

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런 사랑을 그리워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까?

 


철 지난지도 모르고

홀로 피어있는 영산홍 꽃잎 하나

상처 입은 모습으로 그 곁에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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