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효과 - 피그말리온 효과 - 로젠탈 효과
알고 있는 난초는 몇 종류가 되는지요? 한국 자생 난초만 해도 석곡, 풍란, 한란, 탐라란, 보춘화 등 수백 가지나 됩니다. 난초의 종류가 왜 이렇게 많을까요? 오래전 바다의 녹조류가 육지로 진출하여 지금의 식물로 진화했지요. 그런데 난초과 식물은 다른 식물에 비해 육상 출현이 늦었습니다. 살기 좋은 자리를 찾아보니 웬만한 자리는 이미 다른 식물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틈새 전략을 모색했습니다. 결국, 난초는 좁고 척박한 지역에 정착하였고, 살아남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종으로 분화하게 된 것입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난초를 청초와 향기의 상징으로 칭송해 왔습니다. '그 향기 천리를 간다'라고 난향천리(蘭香千里)라 묘사했고, '깊은 수풀에 있어도 스스로 향기를 뿜는다'라고 난재유림역자향(蘭在幽林亦自香)이라 읊었지요. '쇠와 같이 단단하고 난초와 같이 향기로운 우정'을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하고,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로운 우정'을 공자는 지란지교(芝蘭之交)라 했습니다. 공자가 산간을 지나다가 난초 향기에 걸음을 멈추고 그 향취에 잠겨 심신을 맑게 했다고 한 고사에서 훈욕(薰浴)이란 말이 탄생했고요.
그런데 2천5백 년 전의 난초와 지금의 난초는 같은 식물일까요? 지금의 난초는 10세기를 전후하여 재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공자 시대의 난초는 국화과의 향등골나물이라고 합니다. 난초에 관한 삼국지 이야기 하나 해볼까요. 유비는 재능은 뛰어났지만 공손하지 못한 장유를 벼르고 있었습니다. 한중대전을 앞두고 장유가 조조를 두둔하는 말을 하자, 유비는 바로 장유를 처형하라고 명령합니다.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장유가 무슨 죄를 지었냐 묻자, 유비는 능청스럽게 대꾸합니다.
향기로운 난초라도 문 앞에 피어나면 제거하지 않을 수 없지. 그 난초가 무슨 죄가 있냐고? 그 죄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것이지.
19세기 말 청나라 이종오가 지은 『후흑학(厚黑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영웅을 꿈꾸며 공부하던 이종오는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렇군! 옛날의 영웅호걸이란 다름 아니라 얼굴이 두껍고 뱃속이 시커먼 자들뿐이로군." 후흑학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얼굴이 두꺼운 사람을 철면피(鐵面皮)라고도 하는데, 달리는 면후심흑(面厚心黑) - 얼굴이 두껍고 마음은 검다 – 하다는 말에서 따왔지요. 이종오는 유비를 후흑학의 비조로 삼고 있습니다. 후흑학에 기술된 「관직을 구하는 여섯 가지 요령」과 같은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워낙 흥미로운 글이라 「관리의 여섯 가지 지침」을 짧게 적어 보겠습니다.
① 공(空): 문서 내용이 없더라도 유능한 것처럼 보이게 처리한다.
② 공(恭): 상관의 친척과 친구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며 아양 떤다.
③ 붕(繃): 아랫사람과 백성을 대할 때 대단한 인물인 양 뻣뻣하게 군다.
④ 흉(兇):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반드시 인의와 도덕의 탈을 쓴다.
⑤ 농(聾): 비웃음과 욕을 먹더라도 귀먹은 듯 처신한다.
⑥ 농(弄): 뇌물을 긁어모으고 돈을 가지고 논다.
그러네요. 냉정하게 주위를 돌아보시지요. 출세할 능력은 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 출세할 깜냥도 아니면서도 어느새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군상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분명 후흑(厚黑)의 묘리가 끼어들었을 겁니다. 바로 머리를 스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고, 상사 중에서도 "그럴 수도 있겠군." 하는 얼굴이 스쳐 지나지요?
강호에서 오래 목숨을 부지하려면 능력의 삼 할을 숨겨라. 특히, 노인과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를 조심하라.
무협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요즘 관점으로 해석하면 상사보다 똑똑하다는 – 똑똑하다는 인상을 줘서는 - 비밀(?)이 노출되도록 방심하지 말라는 경구입니다. 실력을 한껏 뽐내고 나면 눈앞에서야 칭찬받겠지만, 돌아서서는 ‘건방진 친구’로 낙인찍혀 버릴지 모릅니다. 자칫하면 ‘낙인효과(Stigma Effect)’의 희생양,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서 핀 향기로운 난초의 신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윗사람들의 생각은 능력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충성심은 그렇지 않다는데 꽂혀 있습니다. 낭만만으로 강호를 주유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나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는 아실 겁니다. 칭찬과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명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은 실험으로도 증명되었습니다. 아래에서 위로도 이 법칙은 적용됩니다. 아첨과 아부는 다른 단어입니다. 아첨은 자기만 잘되겠다는 행위이고, 아부는 윗사람에 대한 칭찬과 인정을 표현하는 말과 행동일 뿐입니다. 부하직원이 상사의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듯, 상사도 내심 권력과 역량을 인정받길 기대하지요. 그래서 아부는 아부인 줄 알면서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아부하다 처형당했다거나 내침을 당한 사람은 찾기 힘든 법입니다.
아부를 회사 생활에 있어 윤활유나 양념 정도로 여기면 되는데, 교조적 유교적 전통 때문인지 무척 어려워합니다. 최근 친구가 묻더군요. 상사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과하지 않을 정도의 포도주 한 병을 선물하라 조언했습니다. 다만, 어떤 부탁의 말도 덧붙이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요. 그럴 바엔 퇴직하겠다는 걸, 아부로 여기지 말고, 평소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 정도로 받아들이라고 세뇌했지요. 너무 당연하게 냉큼 챙기는 바람에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부탁을 하면 상사들은 다들 좋아합니다. 자기의 권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은 『수상록』의 작가 몽테뉴 평전입니다. 몽테뉴와 친분이 있던 앙리 4세가 왕이 되자, 모두 몽테뉴의 출세를 점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몽테뉴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집필에 전념했습니다. 이에 대해 츠바이크는 "왕들은 자신에게 은총을 구하는 자들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은총을 구하지 않는 자들은 더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평가합니다. 윗사람들은 아부를 더 원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려고 출세했는데……. 몽테뉴는 왕에게 사과편지를 보냅니다. 당당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통치자의 은총에서 물질적 이익을 구한 적이 없었으며 그런 이익을 바란 적도, 얻은 적도 없습니다. …… 폐하, 저는 제 스스로 바라는 만큼은 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