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의 힘, 하이브리드 효과

순혈주의 - 현상유지 성향 - 필마온 효과

by 포레스트 하이

숲 해설가 전문과정에는 30시간의 현장실습이 포함됩니다. ‘따릉이 타고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탐방’ 프로그램에 보조강사로 참여했지요. 국회의사당에서 63 빌딩 가는 자전거 도로 옆에 가늘고 키는 20m는 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미루나무 같기도 하고 버드나무 같기도 하여 갸우뚱거렸는데, 이태리포플러였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이탈리아를 떠나 한국에 건너와 살고 있는지.


사연은 이랬습니다. 19세기 캐나다 포플러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이주했습니다. 거기서 미루나무와 교잡하여 강한 바람에도 견디는 잡종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방풍림으로 인기를 끌었다지요. 한국은 전쟁 이후 산림녹화를 위해 조림(造林)에 적합한 나무를 찾던 중 1955년에 이탈리아에서 이 교잡종 나무를 들여왔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 들여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이태리포플러라고 합니다. 키는 30m에 이르고 지름 약 80cm인 낙엽성 교목입니다. 참고로 포플러와 미루나무는 둘 다 버드나무과 인데, 하위분류상 포플러는 사시나무 속, 미루나무는 버드나무 속 식물입니다.


미루나무 혼합.jpg 왼쪽 사진부터 미루나무, 수양버들, 이태리포플러 / 환경부 홈페이지 등


어린 시절 불렀던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라는 동요를 생각하면 미루나무가 얼마나 키가 크고 빨리 자라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미국에서 들여온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미류(美柳)’라 부르다 나중에 미루나무로 바뀌었습니다. 포플러도 가수 이예린의 <포플러 그늘 아래>처럼 아주 친숙하지요. 가로수로도 흔히 볼 수 있고요.


버드나무는 유독 잡종이 많습니다. 잡종의 강점은 강한 번식력에 있지요. 버드나무는 암수딴그루(자웅 이주, 雌雄異株) 나무입니다. 암수한그루(자웅 동주, 雌雄同株) 식물보다 자가 생식 확률이 낮아, 다양한 유전자를 지닌 자손을 만들어야만 생존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지요. 19세기 유럽 대기근 당시 아일랜드가 유독 고초를 심하게 겪었던 이유는, 아일랜드만 단일 품종 감자를 심었고, 그 품종이 마침 역병에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약 1백만 명이 죽었는데, 다양한 유전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사례로 꼽힙니다.

버드나무 새순 / Pixabay


우리나라 버드나무는 수양버들, 키버들, 왕버들, 양버들, 선버들, 갯버들, 호랑버들 등 약 40종이 훌쩍 넘습니다. 그래서 버드나무와 관련한 일화가 적지 않습니다. ‘양치’는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닦았다는 양지(楊枝)에서 유래되었다는 속설이 있고, 버드나무처럼 가는 여성의 허리를 세류요(細柳腰)라고 불렀지요.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등 대중가요 가사에도 자주 등장하고 보면 주변에 흔하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퇴직 후 1인 연구소 창업 컨설팅을 받고자 컨설턴트 후배를 만났습니다. ‘숲과 직장생활’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고, 교육 및 강의 활동에 관심이 있다니 예상 못 했던 말을 들려주더군요. 같은 직장에만 평생을 근무하다 보니 시야도 좁고, 매너리즘과 경험의 빈곤을 걱정하던 참이었거든요.


한 직장에서 신입사원부터 경영진까지 두루 경험한 사람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도 서른 해 이상을요. 직장생활의 A부터 Z까지 낱낱이 알고 있잖습니까? 저만해도 벌써 세 번째 직장인데 매번 경력이 단절되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공기업과 민간기업 최고경영자 사이에 인재 수혈에 대해 논쟁했던 기억납니다. “인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떡잎부터 차근차근 키운다.”라는 순혈주의와 “바뀐 세상에는 과거의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라는 혼혈주의가 맞부딪친 겁니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끄집어냈다는 사실은 인력시장에서 변화의 조짐을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인재 순혈주의는 공개채용 방식의 기수문화와 지휘체계가 일사불란한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 흔합니다. 평생직장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고요. 사실 순혈주의는 장점이 꽤 많습니다. 같은 조직문화와 비전을 공유하고 있고, 한솥밥을 먹으며 일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형성되지요. 그래서 위기의 순간에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반면 끼리끼리 문화, 온정주의의 영향으로 긴장감이 떨어지고 변화의 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결정 과정이 길어지는데, 특히 성장 시기에는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현상유지 성향’(status quo bias) 혹은 ‘위험회피 성향’이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성과 연봉, 발탁 인사, 처벌 강화 등 합리적 인사관리 시스템도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고요.


짐 로저스가 노량진 학원가에서 배회하는 공시족 백만 명 현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공정과 배려의 담론 하에 지금은 순혈주의가 다소간 우세하지만,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 시대, AI의 시대, 재택근무의 시대에 순혈주의와 공채제도는 점차 설 땅을 잃고 있습니다. 어느 그룹은 공채를 중단하고, 수시채용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지요.


‘필마온((弼馬溫) 효과' 들어보셨습니까? 메기 효과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필마온’은 옥황상제가 손오공에게 부여한 직위인데, 천계의 마구간을 관리하는 자리입니다. 마구간에 원숭이를 한 마리 풀어놓으면 천방치축 활발한 원숭이 때문에 겁이 많은 말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오히려 병에 걸리지 않고 튼튼해진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하이브리드 즉 혼혈주의 인사정책의 장점도 적지 않습니다.


앞으로 적어도 3번 많게는 5번 이상 직장을 옮겨야 하는 시대입니다.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금의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5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장 비정하다고 알려진 미국 기업의 모습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대사를 통해 미리 느껴 보시지요. 인턴사원 앤디가 힘들다고 불평을 널어놓자 동료 나이젤이 하는 말을 추려봤습니다. 저도 한때는 여의도에서 마포대교 너머까지 줄 섰다고 말하곤 했지요.


그럼 그만둬, 그만두라고. 진지해지라고. 넌 노력하지 않아. 넌 징징대는 거야. 5분 안에 널 대신할 사람 구할 수 있다고. 그것도 간절히 원하는. 남들은 죽는시늉도 하는데, 네겐 그저 스쳐 가는 자리잖아. 그러면서 왜 미란다가 이마에 키스해 주지 않는지, 하루가 끝날 때 참 잘했어요 해 주지 않는지 알고 싶어? 정신 차려.
So quit. quit. Be serious. You are not trying. You are whining. Can get another girl to take your job in five minutes, one who really wants it. This place, where so many people would die to work, you only deign to work. And you want to know why she doesn't kiss you on the forehead and give you a gold star on your homework at the end of the day. Wake up, sweet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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