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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Sep 14. 2021

엄마가 자주 말하는 키워드에 담긴 무게

 케이크 위 한들거리는 촛불을 바라보는 라온이에게 마음속으로 소원을 생각한 다음 후 불라고 했다. 녀석은 미소를 머금고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촛불을 껐다. 곧이어 옆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로운이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 여섯 살에게 있어 형의 생일은 촛불을 끌 수 있는 신나는 기회였다. 남편이 다시 촛불을 켜고, 가족들이 박수를 쳐주며 노래를 불러주니 녀석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주인공인 라온이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노래가 끝난 후 입김을 힘껏 내뱉어 촛불을 끈 로운이가 말했다.

  “엄마, 나 무슨 소원 빌었는지 알아?”

  “글쎄…… 우리 로운이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뭐냐면…… 내가 영원히 행복한 거.”

  “와우! 정말 멋진 소원이다.”

  라온이도 곧바로 내게 물었다. 로운이가 했던 질문을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한 것이다. 동생 따라쟁이다운 면모는 그날도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는 로운이가 라온이를 따라 하기 일쑤였는데, 언제가부터 입장이 바뀌었다. 
   라온이의 그런 모습은 볼 때마다 귀여우면서도 신기했다. 일례로, 나의 작은 언니가 아이들과 인형 가게에 갔을 때다. 각자 원하는 인형을 고르라는 이모의 말에 둘은 흩어져서 탐색을 시작했다. 잠시 뒤, 로운이는 손바닥만 한 분홍 토끼 인형을 골랐다. 이모와 동생이 얘기 나누는 모습을 본 라온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동생이 인형을 골랐다는 말에 녀석은 자기도 그 인형으로 하겠다고 했다. 똑같은 인형이어도 괜찮겠냐고 이모가 재차 물었지만 라온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쌍둥이 토끼 인형이 우리 집 새 식구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작은 언니가 새로운 인형을 사주었다. 우리 집에는 또 다른 쌍둥이 인형이 들어왔다. 라온이가 또다시 동생이 먼저 고른 펭귄 인형으로 선택했으니까.

 

 


  

무언가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때, 라온이는 한참이 지나도 좀처럼 결정을 못한다. 그런 녀석에게 동생은 고마운 존재다. 선택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를 주니 말이다. 성격이 다른 형제가 보일 수 있는 조화로움이다. 나는 라온이가 너무 동생을 따라 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지 염려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난감한 상황에서 동생을 활용(?)하는 지혜를 보이는 것으로 여긴다. 언젠가는 오로지 녀석의 기준과 판단하에 선택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요즘 그 가능성을 보고 있다. 한때는 동생을 따라 하는 일이 잦았는데, 언젠가부터는 점차 그 횟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라온이는 생일 소원으로 무엇을 빌었을까? 소원마저도 동생을 따라 할까나 싶었다. 다행히 녀석이 따라 한 것은 생일 소원이 무엇인지 맞춰보라는 질문뿐이었다. 그다음에는 자신만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했다.  

  “내 소원은 지구가 건강해지는 거야. 아! 그리고 코로나 없어지는 거.”

  “와우! 정말 멋진 소원이다.”

  나는 로운이에게 해주었던 반응을 똑같이 해주었다.     

  아이들의 소원에는 평소 내가 녀석들에게 자주 말하는 키워드가 담겨 있었다. 나의 중요 키워드는 이렇다. 행복, 지혜, 건강, 가족, 지구문제, 실천, 올바름……. 

  여섯 살, 여덟 살배기 두 꼬마는 나에게 들어왔던 키워드 중 일부를 재료로 하여 자신만의 생각을 입혀서 '소원'이라는 형태로 내놓았다. 어디 소원뿐이겠는가! 내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은 다양한 영역에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영향은 내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만날 사람들에게도 미치지 않겠는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반드시 감당해내야만 한다. 나를 위해, 아이를 위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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