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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남수 Jan 23. 2021

소의 눈물

 소는 가축이자 가족이었다. 우리 식구 삼시세끼 밥을 먹을 때, 아니 우리보다 먼저 소밥을 챙겼다. 할아버지는 겨울 아침 눈 뜨면 바로 건넌방 아궁이에 걸린 솥에 쌀뜨물 등을 부어 소 밥(여물)을 끓이고 할머니는 안방 솥에 사람 밥을 지었다. 식구들은 들일을 하는 틈틈이 소의 식량인 풀을 베러 다녔다. 소도 식구들과 같이 일했다. 겨울이면 우리는 내복을 입었고 소는 볏짚을 엮어 바람막이를 걸쳐주었다. 등을 싸리 빗자루로 싹싹 쓸어 등에를 떼 주며 주절주절 말을 걸면 음메~ 하며 귀찮은 듯 답해주기도 했다.  

    

 소는 아프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문제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상세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힘이 빠져 더 뎅그래진 눈을 들여다보면 어찌나 안타까운지 애가 탔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소 눈이라고 생각했다. 소를 키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왕방울 같은 눈이 얼마나 깊은지.

 소가 새끼를 낳을 때면 금기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조심하며 출산을 돕고 영양을 더한 곡류를 듬뿍 넣어 여물을 끓였다.


 문제는 그 송아지가 크면 장날 팔려간다는 것이다. 농가에서 소는 아들의 학비나 딸의 혼사로 큰일이 있을 때마다 팔아야 했다.

 소도 그런 때를 예감하는 걸까, 어미 뒤를 따라다니던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씌울 때 짐작하게 될까. 송아지는 끌려가지 않으려 버둥거리고 어미는 몇 날 며칠을 새끼가 없어진 외양간에서 울어댔다. 눈곱인지 눈물인지 눈가에 얼룩이 졌다. 어디론가 팔려 간 송아지는 또 그곳에서 어미한테 닿으라고 울어 댈 것이다.

 가축 하나를 생이별시킨 주인은 어미 소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헛기침만 해댔다.  

   

 즐겨보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대동물 수의사가 출연했다. 고양이나 개가 아닌 말이나 소 같이 큰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를 대동물 수의사라고 한다는 것을 나도 처음 알았다. 그의 치료과정을 보여주는 몇 장면이 나왔다.      

 다리가 기형으로 태어난 송아지는 걷지 못했다. 다리의 한 부분을 절단 후 봉합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농부는 그렁한 눈으로 송아지를 바라보다 우리로 들어가 말없이 쓰다듬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 아직은 힘이 부치는지 비틀비틀 일어서는 송아지, 시청하는 내 다리에도 있는 힘이 다 모아졌다. 하루 더 지난 송아지는 무릎을 구부려 서더니 걷기 시작했다. 어미 소가 안심한 표정으로 새끼를 바라보았다.    

  

 수의사는 특히 잊을 수 없는 사례 하나를 말했다.  어느 농가에서 소가 새끼를 못 낳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섰다. 자궁에 문제가 있었다. 송아지가 이미 죽었겠다고 짐작한 후 어미 소를 살리려고 제왕절개를 했는데 배 안에서 송아지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게 아닌가. 너무 반가워 고맙다,고맙다,했다는 사례였다.     

 

 어떤 동물보다 소가 좋았다. 함께 자란 어린 시절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 물영아리 초지에 소가 풀 뜯는 모습을 보러 가기도 한다.

 한라산이 하얗게 눈 덮인 겨울, 소들은 다 편안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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