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계속 붙잡아 온 것들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은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역시, 어느 날 결심해서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 오래전부터 내 삶에 남아 있던 것들이었고, 오래 나에게 머물러 달라고,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꼭 붙들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이 장면만큼은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오래 생각해 왔다. 그 마음으로 계속해 왔을 뿐이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때, 나를 붙잡아준 것들이 있었다. 커피였고, 책이었고,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 마주 앉아 시간을 함께 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들은 나를 단번에 아픈 마음을 치유하거나, 삶을 바꿔주지는 않았지만 무너지지 않게 해 주었고, 하루를 다시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유를 찾게 했고,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을 주었다. 이 넓디넓은 세상에 내 자리 하나 만들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게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만감을 주었다.
커피
혼자 마시는 것도 참 좋아한다. 아침에 집에서 천천히 한 잔을 내려 마시는 시간은,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유 같은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시작할지 마음을 가다듬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나를 정돈할 수 있었다. 동시에 커피는 늘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커피를 마시면 함께 하고 싶은 얼굴들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혼자만 즐기기에는 아까운 순간들이 있었고, 그 연결이 나는 참 좋았다.
책
책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나로 향해 방향을 틀어주었다. 안으로 안으로, 내면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게 해 주었다. 반대로 함께 있는 시간은 나를 바깥으로 열어주었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순간들, 내가 미처 붙잡지 못한 감정을 다른 사람의 말로 건네받는 경험.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책도, 함께 있는 책도 모두 붙잡고 싶었다. 어느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둘 다 내 삶에 남겨두고 싶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을 혼자만의 취향으로 간직했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완성된 결과, 완벽한 결과물로 남기면 좋겠지만, 애초에 나는 그리 완벽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을 지나고 있는 나의 상태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전히 나는 현재진행 중이니까. 시간이 없을 때도 많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라도 기록했다. 음성으로 녹음할 때도 많고, 짧은 메모라도 저장해두기도 했다. 폰으로 메모를 하거나 작은 노트에 기록해 둔 것, 책을 읽으며 귀퉁이에 마구잡이로 써 둔 메모까지, 나를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 소중했다. 잘 쓰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 상태로 계속 남기고 싶었다.
그동안 해오던 것들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기.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며 기록하는 것. 이 장면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할 뿐이다. 욕심으로는 좋은 결과물이 남으면 좋겠지만, 그런 욕심도 분명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지금도 너무나 소중하기에, 여전히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지속해오고 있다. 혼자 해도 좋고, 이 좋은 것 같이 하자고 말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더 하고 싶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무엇이 될지를 먼저 묻기보다 일단은 계속해보라고. 이게 일이 될 수 있을지 계산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원하는 곳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기록하고, 나의 루틴을 만들어가다 보면 변화는 생각지도 못하게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 난 어떤 전환점 위에 서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오래 지켜온 장면들을 여전히 품고 있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도, 함께하는 시간도 모두 나에게 필요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사람으로.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황이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