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
커피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을 운영하고, 각자의 커피 취향을 천천히 발견해 보는 커피 클럽을 열기도 하며, 오랫동안 이어온 기록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더 깊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장면들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종종 비슷한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마시던 커피 컵을 내려놓으며 "저는 커피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제가 뭘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던 분. 커피 클럽을 운영하며 내가 알려드리는 건 커피 내리는 방법은 아니다. 그저 서로 다른 몇 가지의 원두를 가지고 내려드리고, 한 잔씩 맛보며 나와 잘 맞는 커피취향을 알아가는 자리다. 커피도 여러 가지로 마셔보아야, 나에게 맞는 커피를 알 수 있다. 그분은 자신이 무슨 커피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이 좋았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오래 남았고, 그때 깨달았다. 내가 잘하는 건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각을 믿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혼자 좋아하는 것보다 이 좋은 걸 함께하며 공유하는 걸 더 잘하는 나를 발견했다.
돌아보면 나는 늘 그런 쪽에 가까웠다. 책을 읽을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빠르게 결과에 도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앞에 두고 오래 머물렀다. 남들이 지나치는 사소한 차이를 반복해서 들여다보고, 마음에 걸리는 문장은 다시 펼쳐보고, 같은 커피를 다른 날에 또 마셔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회사 일이 힘들어질수록 나는 더 자주 카페로 향했다. 멀리 가지도 않았다. 회사 근처, 늘 가던 자리, 안쪽 구석진 자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커피만 마시기도 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됐고 오로지 나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어서 충만한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일은, 나를 더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숨 쉴 자리, 틈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운영하고 있는 북클럽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다. 책을 다 읽지 못했다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나 역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독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머물러 나의 생각을 꺼내볼 수 있는 그런 틈이라고 생각했다. 한 문장,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간을 여러 번 보기도 한다. 나는 그런 장면들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아하는 것을 혼자만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늘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걸 같이 해보면 어떨까, 이 시간을 함께 나눌 수는 없을까.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같이하자고 말하는 데에는 꽤 익숙한 편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붙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혼자 품고 있기보다는, 테이블 의자 하나를 더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확실히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다. 잘한다는 말은 능숙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에게는 쉽게 떠나지 않는 말과도 같았다.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애써 저항하기 보다는, 내가 오래 머물며 견딜 수 있는 리듬을 찾으려고 했다. 빠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 마음이 머무르는 곳으로 간다. 때로는 불안했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점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그런 내가 좋았다.
나는 점차 삶을 조정해 왔다. 무엇이 되어야 하기보다는, 어떤 하루를 보내며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자주 떠올린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 읽고 쓰는 시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들. 그런 장면들이 오래 내 곁에 머물기를 원하고 그런 방향으로 선택을 계속해 왔을 뿐이다. 앞으로도 어쩌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며 도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의 리듬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삶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는 사람으로. 그게 세상에서 오로지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고, 앞으로도 지켜 가고 싶은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