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여행> 정여울 지음
오랫동안 내가 하고 있던 일, 좋아하면서도 지독하게 힘들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바로 보여주는 나만의 빛이 되기도 하면서 힘겨운 콤플렉스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일을 해내야 하기에 야근과 철야가 많았다. 퇴근 후의 일상은 나에게는 당연히 없었고 일하지 않는 주말은 황금같이 귀중했다. 경력을 치열하게 쌓고 이직을 통해 내 몸값을 올렸다. 나에게 안정적인 직장은 없었다. 오로지 내 업에 대한 노력과 고민으로 살았다. 좋아서 몸담기 시작한 직업이지만 여유가 없었기에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만 갔다. 주변에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집에 돌아오면 외로웠다. 집에 혼자 앉아있으면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덮쳐 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닥뜨린 상황이나 사람들에게서 힘들 때 보통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 있나,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관계에 있어서 더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나를 이해해주고 등대같이 나를 밝혀줄 멘토 같은 사람을 찾는 마음, 힘든 상황에 흔들리는 날 붙들어 잡고 강해지고 싶은 마음, 이 모든 마음이 각자 방을 만들어 존재하고 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 다면 말한 대로 잘 이행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쉽지 않다는 것 잘 안다. 종종 나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그림자가 등장한다. 나를 빛내주는 나만의 빛이 있는 반면에 숨은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트라우마나 슬픔, 힘든 마음의 그림자까지, 숨기고 싶지만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기도 하다. 더 나은 모습이 되고 싶은 욕구로 그림자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숨기면서 나를 채찍질하다가 어느 순간 털썩 주저앉는 날이 왔다. "항상 더 나은 나를 꿈꾸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를 쓰다듬는 또 다른 나의 손길은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아, 지금의 너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한걸.’" 힘들었던 날에 정여울 작가의 책 <그림자 여행>은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웅크리고 있던 나를 토닥토닥 달래주었다.
이제는 힘들었던 상황 속의 이면을 보는 여유가 생겨났다. 콤플렉스라고 여겼던 힘든 내 직업으로 인해 어떻게든 버티는 깡이 생겼다. 나를 극한으로 밀어붙여 해내고 말 거라는 스스로 주문을 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해내고 나면 희열을 맛보았다. 콤플렉스의 그림자가 실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어디 그뿐인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찾기 위해 몇 년간 부단히 노력해 왔기 때문에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도 내 시간 찾는 것은 습관으로 나마 남아 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나는 혼자 살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었던 날에 친한 언니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나의 어둡고도 약한 틈새를 파고들었다. 내가 가진 마음의 결을 따라, 나도 모르는 심연의 목소리를 찾아, 스스로를 다스리기로 했다. 그 후로 힘들 때마다 이 책을 찾고 또 찾았다.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첫인상이 좋았던 책이기에 그 후로도 자주 찾아 읽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다시 꺼내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던 날에 책장 앞에 서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책이 뭐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난 <그림자 여행> 앞에 섰다. 가장 먼저 나를 안아 줬던 책이었다.
일하고 있는 나와 육아를 하고 있는 나의 온도차가 존재하고 있다. 같은 한 사람일지라도 분명 다른 세계 속에서 생존하고 있는 방법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육아가 힘들어서 극에 달하는 날에는 남편에게 가시 돋친 모진 말을 내뱉었다. 나를 다스리기가 어렵다. 아니, 다스리기보다는 분출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지고 있다.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번에는 책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읽을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외유내강(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나 속은 곧고 굳셈)이 떠올랐다. 항상 품고 다니는 말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선뜻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부드럽고도 유연한 태도로 나에게 닥친 모든 상황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을 그런 굳은 심지를 가진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다. 풀이해서 보면 장황하나 4글자에 놀랍게도 잘 함축되어 있다. 이런 나를 더 굳게 만들어준 책이 여기에 있다. 책에 밑줄 친 문장들과 함께 ‘외유내강’을 더 깊게 새기게 되었다.
정여울 작가, 어떤 사람일까? 그가 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부드럽고도 단단한 사람일 것 같다. 그의 책을 고르고 있다 보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여행을 통한 인문학 에세이도 있고 지치고 아픈 마음을 파고 들어가 달래어 주는 책도 많다. 여러 책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바로 <그림자 여행>이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이 중간에 들어가 있고, 그가 읽고 본 책이나 영화의 이야기, 그리고 여행지에서 느낀 것이 한껏 잘 묻어나 있다.
책 표지에 있는 제목과 소제목이 가장 좋다. <그림자 여행> 내가 꿈꾸는 강인함. 이 두 줄만으로도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 잘 전달되었다. 어둡고 형체로만 보이는 그림자도 ‘나’이다. 이곳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내가 꿈꾸는 강인함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빛나는 지성과, 타인의 그림자를 보듬어주는 따스한 감성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그림자 여행>
좋아하는 사자성어에 좋아하는 책의 글귀가 더해져 내가 품어야 할 마음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나를 위한 말과 글도 좋지만 이것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읽은 날부터 몸소 깨달았다. 세상은 함께 어우러져 같이 살아 나가야 한다. 달래주었던 고마운 책이란 마음이 컸지만,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나니 처음의 마음이 달라졌다. 오직 나에게 향해 있던 그림자가 커져서 내 주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우르고 싶어 졌다. ‘외유내강’을 꿈꾸며 내가 발하는 빛으로, 다른 사람의 결을 이해하려 애쓰고 같이 빛을 발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내가 가진 질문들의 답을 찾으려고 책을 찾고 동시에 즐거움을 느낀다. 오랫동안 가지고 온 습관이기에 아무 이유 없이 책장 앞에 서 있거나, 서점에 들어가 지금 내 상황에 알맞은 책을 고르기도 한다. 나에게 책은 깜깜하고 어두운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존재들은 우리 삶의 빛나는 등대”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니 함께 의지하며 살고 있는 남편이 나에게 든든한 등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같이 읽고 글을 쓰는 이들은 이제 함께하고 있음에 서로 탄탄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친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즐거움을 소소하게 나누고 손 꼭 잡고 아픔을 말하며 서로 힘이 되고 있다. 쓰고 있는 지금, 나에게 이토록 힘이 되는 존재들이 있음을 느끼며 미소가 지어진다. 두근두근 설레기도 한다.
힘겨워서 꺼내기조차 싫었던 일상도 우리의 한 부분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빛이 있는 가하면 제대로 보지 못하던 그림자도 함께 존재한다. 두렵고 힘들어하며 외로웠던 그림자, 이제는 품고 꼭 안아주려 한다 ’ 괜찮아, 지금으로도 충분해.‘ 부드럽고도 강인한 마음으로 내 주변의 사람들을 함께 품고 싶다. 서로에게 등대가 되어 주는 그런 멋진 날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세상은 무심하게도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온갖 자극적인 말들이 떠다니기도 하고 아프고도 외로운 감정을 더욱 크게 부풀리기도 한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라고, 서로의 힘을 느끼며 살자고 작가는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약한 틈 사이를 깊이 파고 들어와 스며든 문장이 이제는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되고 싶은 모습이 잘 투영되어 있어 이 책을 계속 찾고 있으며 주변에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내 꿈은 적어도 나에게는 소중한 세상의 의미들, 그리하여 언젠가는 다른 이들에게도 소중해질 그 무언가를 담고 있는, 무의식의 아름다운 별자리로 거듭날 것이다.” <그림자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