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면 든든한 것이 있다. 책덕후에게 필요한 것.
몇 년 전에 직장인으로 살던 날에 목 디스크와 함께 오십견 초기증상이 왔다. 팔이 저리고 무거운 것을 들기 힘들게 되었다. 늘 가방에 책 한권이 있었기에 아무리 가벼운 가방이라고 해도 책이 있어서 가볍게 다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책 한권도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오래타고 다녀야 했던 출퇴근길에 나는 책을 읽어야했다. 결국 무겁던 종이책을 빼고 그 자리에 가벼운 전자책 단말기를 사서 넣었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아무것도 읽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책이 있어야하니까, 전자책이라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렇게 출퇴근길에선 가벼운 전자책 단말기가 가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가볍고 실용적인 전자책이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책을 한 장씩 넘기는 맛, 책만이 가지는 냄새! 인덱스도 붙이고 연필로 밑줄 긋는 이 쏠쏠한 재미 포기할 수 없다. 전자책을 보고 있으면 이런 물리적인 느낌을 접할 수가 없다. 아쉽지만 활자로만 책을 대할 뿐, 종이 책만큼 잘 읽히지 않는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책을 넘기는 소리, 냄새까지, 여러 감각을 동원하며 읽고 있다. 전자책처럼 활자에 집중하며 보고 있는 것이 아닌,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우리의 많은 감각을 움직여야 한다.
종이책 예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종이책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다. 전자책은 기기를 켜서 목록을 찾아야 무슨 책을 읽을 수 있나 알 수 있는데 종이책은 그렇지가 않다. 책장에 한 권씩 꽂혀 있는 모습만 보고도 고를 수 있다. 나에게 이 부분은 종이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무슨 책을 읽을지 찾아야 하는 것과, 찾지 않아도 시선이 자연스레 옮겨 다니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전자책으로 좋아했던 문장과 관심 있는 책을 찾는 과정이 간단하지만, 그래도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을 보며 하나씩 내 눈이 책등을 옮겨 다니는 순간이 좋다.
아무리 전자책이 실용적이라 해도 실물을 보고 만지며 보고 싶은 욕구는 해결이 되지 않기에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종이책을 오로지 내 감각으로 마음껏 책을 느끼고 싶었다. 책이 주는 물질성의 축복을 계속 누리고 싶다. 하지만 종이책도 읽을 여유와 몸 상태가 되어야 즐길 수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자책이 필요한 날이 왔다.
아이를 낳고 나니 종이책을 읽는 시간과 책 들고 있는 순간이 사치가 되었다. 내 손은 책을 들고 있는 손이 아닌, 아기를 돌보는 손이 되었다. 침대에 아기를 재우며, 새벽 수유를 하며 전자책을 찾기도 했다. 전자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날이 왔다.
밤잠을 잘 자던 아이가 예민함의 최고조를 달리게 되었다. 낮이든 밤이든 잘 때 엄마가 옆에 꼭 있어야 했다. 아이가 자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내 종이책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다시 전자책단말기를 꺼내 충전을 하고 책을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변수가 존재하는 육아의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이 가벼운 전자책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아무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해도 책을 읽을 수 없는 날에는 전자책이 있음에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지, 실감하게 된다. 손목과 어깨가 아파서 책 한권 들기 어려운 날에도, 육아하며 종이책 넘겨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책을 향한 목마름이 커지면 커질수록 늘 전자책 단말기는 손 뻗으면 닿는 곳에서 날 지키고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여러 감각을 동원하여 읽기에는 종이책이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디에서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종이책과 전자책,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 보다는 둘 다 구비하고 있으면서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읽으면 그만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늘 고민하는 부분이겠지만 둘의 장점을 살려 자신이 원하는 많은 책을 접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 역시나 어떤 방법으로 읽든, 어느 책이든 포기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