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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Sep 21. 2021

책은 버리는 거 아니에요

지나간 책도 다시 보게 하는 책의 손 길. 책의 쓸모는 바뀐다.



5년 전이었을까 서점에서 표지를 보고 한눈에 반해 사버린 책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지루하게 느껴져 다 읽지 못한 채 덮었었다. 책장에 묵혀두고 있던 날에,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작과 제목도 같다. 줄리아 로버츠의 주연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미 나온 지 한참 된 영화였다. 퇴근한 후 금요일 밤에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영화를 봤다. 책에서 읽었던 장면이 모두 기억나진 않지만, 그중에 상상했던 장면과 영화로 보는 장면이 묘하게 겹치면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책의 시작 부분이었던 주인공 ‘리즈’가 해결되지 않는 마음의 문제로 밤마다 울면서 마음 아파했던 장면에선 나도 함께 마음이 절절했었다. 자신의 생활 터전인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으로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고 그곳에서 살면서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과 리즈의 변한 마음가짐, 삶의 태도에 대해 잔잔한 감동을 받았었다.      



처음에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가 더 좋았고 더 친근하게 다가왔었다. 얼마 안 있다가 원작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민음사)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읽으면 어떤 기분일까 물음표만 잔뜩 만들어 놓은 책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나갔다. 영화 볼 때는 괴로웠던 도시의 일상 그리고 아름답고 생생한 이탈리아와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이 묻어난 장면에 몰입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책으로 읽고 있으니 장면보다는 주인공이 하는 말을 읽으며 감정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 예전에 읽고 덮었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관계를 맺고 함께하며 부딪히기도 했던 날에 나의 모습의 점점 잃어가는 기분이 매일 들었다.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과 가치관은 잊은 채 사는 대로 그저 ‘오늘’을 살고 있었다. 매일이 바빴고 카페인이 없으면 몸이 움직이지 않은, 정신없는 하루를 살고 있었다. 책은 나에게 숨 고르고 잠시 쉬었다가 가라고 말해주었다. 주인공처럼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마음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여행을 계획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나를 위한 틈을 만들어 잠깐의 시간을 즐기려 노력했다. 책은 나에게 휴식을 선물해 주었다.      


처분하지 않고 묶여두길 잘했다. 다시 읽길 참 잘했다.  


     

@mia


   

책이라는 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만난 장소와 때에 따라 엮이는 방향이 전혀 달라진다. 뒤집어 말하자면, 예전에는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책이라도 문맥이 바뀌면 또 다르게 다가온다.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앳워크      



내가 처한 일상에서 책의 주인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만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니 막힘없이 술술 잘 읽을 수 있었다. 책 속의 사람들이 하는 말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이해하려면 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고민해봤어야 했다. 그때그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책, 맞는 책이 있나 보다.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관심 없이 지나간 책이었어도 책은 나에게 다시 손짓을 보내어, 다시 읽어보라고 한다. 책의 쓸모는 바뀌고 있었다.

    

   


세살 아이와 함께 사는 우리 집, 세 식구가 사는 집에 점점 짐이 쌓이고 있다. 우리 짐과 아이의 짐까지 늘 포화상태로 있다. 거기에다가 늘어가는 육아용품만큼이나 내 책도 같이 더 많아지고 있다. 책장 하나에만 책 꽂아 두고 더 넓히지 않기로 했는데 이제는 아래, 위로 꽂고 앞, 뒤로 이중으로 꽂아 빼곡하게 책장이 꽉 찼다. 책은 인테리어 요소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라고 하던데, 우리 집에선 엄마의 정신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지금 인테리어를 논할 수 없는 상황에 살고 있다.



요리조리 쌓이고 있는 책을 보면서 이 또한 짐이라 정리를 한 번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잘 보지 않고 처분할 대상의 책들은 책장의 맨 아래 칸에 두었다. 오래전에 읽고 지금까지 다시 읽지 않은 것 같은 책, 읽고 난 다음 정리 해 놓은 독서기록만 봐도 될 책, 몇 번 읽으려고 했던 시도와 달리 다시 또 덮었던 책, 모두 책장의 맨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이 책들은 우리아기의 장난감이 되고 있다. 아이가 돌지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아이는 하나씩 꺼내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책탑을 쌓아보기도 하고 휙휙 넘기다가 접고 표지도 찢으며 깔깔거리며 논다. 엄마의 마음 한 쪽이 쓰려오지만 그래도 그 곳에 있는 책의 지금의 쓸모는 우리 아기 손에 있다. 어쩌면 다시 나에게 새로운 쓸모로 다가 올지도 몰라서 표지의 찢어진 책은 테이프로 붙이며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여러 책들이 내 책장에 앉아 있다. 읽고 또 읽으면서 몇 가지 색의 밑줄이 더해진 책도 있지만 다 읽지 못한 책도 여전히 많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책 빼고 다른 것들은 잘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난 책에게 한 없이 관대해진다. 처분하려고 쳐다보고 있으면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쓰라려 온다. 다 읽은 책이든 읽다가 덮은 책이든 나중에 그 책만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 물음표가 그 책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나에게 다시금 새 느낌으로 다가올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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