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읽으세요 라고 말하는 교사가 되기는 싫었다.
책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 “선생님, 책이 너무 재미없는데 엄마가 일단 끝까지 다 읽어보래요. 근데 정말 읽기가 싫어요.”
둘, (아무 말 없이 항상 책을 읽고 있음. 진심. 즐기면서.)
초등학교 교실 한 반에 평균 30명이라고 한다면 책을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읽는 학생은 5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것도 꽤 많은 숫자다. 보통 1-2명 있을까 말까 하는데 현실이다. 나머지 25명은 엄마든, 담임이든, 학원 선생님이든 누군가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책임감으로 끝까지 읽기도 하고, 중간에 멈추기도 한다.
정말 다행인 점은 그래도 위 두 부류의 경우 '그래도' 책을 읽기는 읽는다는 것이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그다음 독서 습관을 기르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일단 '책'을 읽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나도 책을 읽는다. 절대 아이들 사이를 휙 돌지 않는다. 그저 앞자리에서 전체적으로 아이들을 휘리릭 둘러볼 뿐이다. 나도 어느샌가 책의 세계에 빠진다. 그러면 꼭 쉬는 시간에 몇 명이 다가와서 묻는다. 선생님, 무슨 책 읽으세요? 책이 재밌어요? 언제부터 책이 재밌었어요? 질문이 끝이 없다. 작전이 성공했다. 다행이다. 질문은 몇몇이지만, 그들이 친구에게 미치는 파급력은 내가 예상할 수 없다. 적어도 교사의 잔소리보다 힘이 세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나.
내가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한 시절은 중학생이 된 후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초등학생 시절이 아니지? 싶지만, 당시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도서실조차 없었다. 졸업하던 해에 모교에 도서관 건립이 완공되어 그 앞에서 졸업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을, 사진으로라도 담고 싶었나 보다.
졸업 후 들어간 중학교는 시내에 위치하여 우리 집까지 버스로 30분이 걸렸다. 버스는 약 3시간에 한 대 꼴로 왔고,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치면 기약 없이 3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학교 앞에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뒤돌아보면 도서관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내가 현재의 독서습관을 가지는데 최고의 행운이었다.
도서관의 위치는 참 특이했다. 도립 도서관 분원이라고 이름은 그럴싸했지만, 실상은 초등학교 강당 지하에 위치하여 문을 열면 늘 쾌쾌한 냄새가 났다. 음습한 기운 속에서 바로 책 냄새를 찾아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바로 다시는 가지 않았을 정도로 침침한 곳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리며 거리를 배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안전하게 시간을 때울 곳이 있다는 것, 더군다나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곳에서 나는 굉장히 많은 책을 ‘대출’했다. 읽었다는 말보다 대출했다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 이리라. 대출했던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나는 유명한 소설부터 고전까지 일단 대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2-3시간 여유가 있으니, 일단 ‘대출’에 성공하면 끝까지 읽던 안 읽던 일단 펼쳐보게 되니 그만큼 독서하기에 좋은 환경도 없었다. 수많은 책을 빌렸지만, 결국 끝까지 읽게 되는 책은 그중에 반은 되었을까.
하지만 내가 그 시기에 얻은 것은 많은 책을 들춰보면서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표지와 목차가 재밌어 보여 일단 빌렸지만, 읽다 보니 이건 아닌데 싶은 책은 조금 더 읽다 중간에 덮어버렸다. 물론 어디까지 읽는 게 좋을까 매번 고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책을 훑어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독서 취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지 소설을 좋아하는지 에세이는 왜 그렇게 재밌는지.. 꽤 많은 작가의 책을 다양하게 보면서 좋아하는 작가도 일찌감치 생겼다. 그렇게 가진 독서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다양한 책을 고르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을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이건 누가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고,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인데, 문제는 일단 여러 가지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에서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아이들도 저마다 책을 읽는 이유가 다양하다. 단순히 재밌어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학습에 필요해서 오늘도 아이들은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의 독서 스타일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어떤 작가의 문체를 좋아하고, 어떤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표지에 끌리는지, 왜 나는 지금 책을 읽는지, 이 책은 어디까지 읽을 수 있을지. 책에 대한 관심이 끝없이 지속한다면 자신만의 독서법을 조만간 발견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책을 무작정 끝까지 읽으려고 강요한다면 오히려 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책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래도 끝까지 읽어봐야 의미가 있지 않겠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없었지만 조금 참고 읽어보니 의외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책 한 권을 완독 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후련함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다만, 그 책의 끝장을 보기 위해 의미 없이 넘겼던 중간중간이 너무 많았다면 책을 한 권 다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독서는 자신의 선택이다.
어떤 독서법을 택하든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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