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우드 Apr 11. 2021

내가 귀뚜라미라고?

엄마, 사람, 초등교사입니다.

이름만 들면 알만한 유명한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유명한 시골은 도대체 어디야?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킥 소리를 내면서 웃음을 참는다. 내 고향을 들으면 누구나 당연한 듯 한 번씩 물어봤다. 그럼 부모님은 농사짓겠네? 나는 순간 가짜 농촌 전문가가 된다.    

 

우리 부모님은 평균 은퇴 나이를 훌쩍 넘기신 지금도 매일 밭에서 흙을 만지신다. 농사짓는 집에서 자란 내가 귀뚜라미를 잘 알 것이라 오해하면 그건 곤란하다. 마치 강릉이 고향이라 말하는 사람에게 그럼 매일 바다를 볼 수 있겠네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자. 강릉이 고향이 사람이 매일 바다에 가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근 20년 동안 시골에 살았지만 귀뚜라미를 포함한 곤충은 거의 본 일이 없고, 곤충이라면 질색한다.     


귀뚜라미의 시작은 이랬다. 늘 그렇듯 그날도 수업이 끝나고 한 숨 돌릴까 해서 들렸던 학년 연구실에는 이미 몇몇 선생님이 차를 마시고 계셨다. 마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내가 들어가자마자 입을 여신다.     


있잖아. 우리 애가 기다리는 택배가 아직도 안 와. "

그게 뭔데요?”

귀뚜라미.”

? 뭐라고요?  웬 귀뚜라미요?”

집에서 도마뱀을 키우는데 귀뚜라미를 먹이로 줘야 하거든.”

설마.. 죽은 귀뚜라미를 사는 거죠? 통에 꽉 담겨서 오는 건가요?” 내 두 눈이 커지는 게 느껴진다. 


이쯤 되면 원하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둥근 플라스틱 통은 빨간색 뚜껑이 꼭 닫혀있다. 그 안에는 뭔가가 차곡차곡 포개져 들어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뭐지 싶은 곤충이 담긴.... 뭔가 갈퀴가 달린 다리를 본 것 같은데,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지. 그런데 그게 움직여. 죽은 게 아니고 그저 담겨있을 뿐이야.


아니? 당연히 살아있는 거지. 살아있는 귀뚜라미를 핀셋으로 잡아서 도마뱀한테 먹이로 주는 거야!”

!! 어떻게 그래요?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아까 이미 눈동자가 최대한 확장된 줄 알았는데 눈이 더 커진다. 내 눈이 이렇게 컸었나.

내 말이 그거야.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그걸 잡아서 주는지, 나도 차마 그것까지는 못하겠더라고.” 


나는 그 순간 귀뚜라미가 된 것 같았다. 도마뱀 앞에 나가 벌벌 떨고 있는 작은 곤충. 그 순간을 상상이라도 한 듯 난 몸을 살짝 움츠렸다. 나는 귀뚜라미가 아니다. 아니다. 작게 맘속으로 외쳤지만, 이미 난 귀뚜라미가 되어 도마뱀 혀 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왜 도마뱀이 아닌 귀뚜라미가 된 것일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귀뚜라미에게도 마지막 마음이 있었을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게 먹고 자고 날던 귀뚜라미였는데, 어느 순간 보니 산 채로 떠밀려 도마뱀의 먹이로 바쳐져야 하는, 귀뚜라미로는 뭔가 억울한 운명이다. 그저 열심히 살려고 하루하루 살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돼버릴 줄 몰랐던 작은 곤충의 마음은 어땠을까. 작은 마음이라고 하기에는 귀뚜라미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온전한 마음이라고 해두면 좋을까.     


살면서 매번 열심히 노력했는데, 고작 이것뿐인가. 여기가 내 끝인가 싶어서 우울했던 적이 많았다. 학창 시절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는데, 20대는 결국 이것이 열심히 공부한 대가인가 싶어 조금은 우울했다. 그리고 30대를 맞았고 이대로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조금씩 걸었다. 마치 통 안에 갇힌 귀뚜라미가 아무리 움직이고 싶어도 꼼짝할 수 없듯이. 결국은 도마뱀의 먹이로 끝날 운명에 갇힌 귀뚜라미지만 그래도 뛰어보겠다고 아등바등했다. 


이 글은 귀뚜라미 마음으로 쓴 고민의 기록이다. 학교에서는 11년 차 초등교사로 분투하며, 집에서는 6년 차 두 아이 엄마로 하루하루가 버겁다. 이미 죽어버린 귀뚜라미처럼 말이 없지만, 아직 가느다랗게 살아있는 귀뚜라미. 조금 더 나은 인간적인 교실을 만들고 싶어 아이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고, 그저 엄마이고 싶어 매 순간 방황한다. 짧은 글이지만,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잠시나마 안도하길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