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신

by min

저기 고대 그리스 때부터 신이라는 게 존재했듯이


누군가의 부뚜막에도 , 이슬 맺힌 풀잎사이에서도 신은 존재한다.


숲 속 깊은 묘비명아래서 , 도시의 하수도 저편에도 신이 있음에 그것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미지는 올곧은 대학원생이라 할 수 없었다. 그저 푸념하고 분노할 뿐인 흔한 노예일 뿐이었다.


"김미지!"


저 멀리서 동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폭탄주 두어 잔, 피로와 심심치 않은 스트레스가 겹쳐져 그녀는 폭발하고 말았다.


터벅터벅

그녀는 맨발에 신발 한 짝을 들고 공원을 서성인다.


"어디 간 거야.. 시발."


그녀의 발광으로 날아가버린 신발을 찾으려 했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개 같은 교수 같으니 , 진심 죽여버리고 싶다."


물론 내일이면 알코올처럼 휘발돼버릴 감정이지만 , 그녀의 지금은 진심이었다.

한숨과 함께 흩어져버린 기운을 따라 미지는 공원 벤치에 앉아 , 하늘을 보았다.


별은 드문드문 있고 , 하늘은 검었고 , 그녀가 느끼기에도 우주는 넓었다.


'나는?'


조막만 한 연구실에서 논문과 씨름하는 생활에 너덜너덜 해진 마음이랴, 어휴

그놈에 헤겔이 어쩌고저쩌고.

지적 욕구와 어쩔 수 없는 그 호기심 때문에 대학원으로 갔지만 ,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무거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땅을 봤을 때였다. 미지는 바닥에 작은 램프를 발견했다.



아...!

이토록 뻔한 클리세란 말인가? 미지는 마치 램프가 소원을 들어줄 것 같은 느낌에 그 작은 램프를 들어 올려 문질러 봤다.



램프는 사악했다. 아니 램프 안에 존재가 사악했다. 그는 고대 신의 한 종류로 사람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그 소원이 그 사람 스스로를 파멸하게 만들었다.

중세 유럽의 고고한 수도사도 높은 권력을 가진 왕도 순수했던 소녀도

모두 그 사악한 존재 앞에서 파멸해 갔다.




미지가 램프를 문지르자 곧 어떤 존재가 나타났다. 연기와도 같지만 어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존재는 미지 앞에 서서 말했다.


"나는 타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 , 너의 소원은 무엇인가?"


미지는 숨을 꿀꺽 삼켰다.

망할 교수 뒤져


그러나 미지의 입에서 나온 건

"타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너의 본질을 너 스스로를 적용하는 자가 되길 바라."


뭐?

뭐?


그 존재는 어리둥절해졌다.

아이씨

미지는 순간 속으로 욕을 되뇌었다.

하필 그때 자기 지시적 명령에 관한 오류가 생각났다.

'AI를 오류 시키는 100가지 방법'이란 타이틀로 AI를 괴롭히던 습관이 훅 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미지를 발견한 동기가 해맑은 얼굴로 다가와

"미지 너 신..... 발"이라 말하려다 그 둘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런 것이....



뭐 그럴 것이다.

가끔 만취한 밤처럼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도 어떤 확률에는 불가능은 아니기에

오늘 일은 내일로 잊어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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