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밭의 파수꾼

by 누두교주

조생원과 허생원 그리고 동이, 물방앗간과 성 서방네 처녀는 누구에게나 아련한 로망이 되기에 충분한 모티브이다. 아이들에게는 한국적 정서와 계절의 아름다움, 농촌의 생활, 그리고 성교육까지 가능한 ‘일타 사피(1)’의 나들이 주제이기도 하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봉평의 메밀밭 근처 복층 콘도를 예약해 나들이 길에 올랐다. 개털이는 언제부터인가 나들이를 가면 특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 분명하다. 우선 나들이 짐을 보면 밥을 거의 안 먹거나 조금만 먹는다. 그리고 제공되는 특식을 먹고 부족한 부분을 밥으로 보충한다. 바꾸어 말하면 나들이 길 메뉴 선택에 있어서 개털이 몫을 계산해야 한다. 즉 봉평이라고 해서 막국수, 메밀전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돼지고기 수육도 시켜야 한다. 이는 간단한 점심이 짜장면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탕슉(2)을 주문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봉평의 가을날은 생각보다 훨씬 정갈하고 풍요로웠다. 이효석 생가도 자연스러웠고 메밀밭의 장관도 인상적이었다. 아주 고운 가루처럼 부서지는 햇볕도 그윽했지만 그 아래 펼쳐진 황토색 대지와 아직 녹색을 잃지 않은 자연은 아이들은 물론 나에게도 한없이 가벼워지는 치유를 안겨 주었다. 물론 개털도 즐겁지만 고단한 하루를 함께 보냈다.


저녁시간에 콘도에 돌아와 “간단하게!(3)” 바비큐를 즐기고 나니 피곤함과 고단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돌아서 보니 아이들은 이미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성의한 그러나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고 개털이도 이미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 양말과 옷을 벗겨 주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도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들이 두 번째 날을 싫어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기가 피곤하다. 항상 나들이 첫날은 일찍 출발하고 좀 들떠서 오랜 시간 야외 활동을 하기 마련이고, 갑자기 바뀐 잠자리에 새벽녘에는 잠을 설피 자는 것이 다반사인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늦잠을 잘 수 없었다. 개털이가 그 원인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다락방 추억을 알려줄 겸 2층에서 자도록 했고 우리는 1층에서 잤는데, 이른 아침에 개털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 2층과 1층을 오가며 깨우고 다니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는 발로 문을 긁기도 했다. 개털이 소란 통에 아이들도 일어나고 우리도 일어나 개털 이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개털이는 나가자마자 푸짐하게 오줌을 갈기고는, 이내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적당히 잘 반죽된 냄새도 거의 없는 똥을 몇 덩이 예쁘게 쌌다.


한편 우리는 이른 새벽에 꽃잎(아내는 능소화라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변색된 얼굴 큰 철쭉 같았다.)과 풀잎에 맺힌 이슬이며, 멀리 피어나는 산안개, 그리고 넓게 새하얀 메밀밭 위로 오렌지 색으로 빛나는 일출을 보는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이 행운은 개털이 똥을 다 싸고 자기가 한 자랑스러운 일에 대한 간식을 청구할 때까지 이어졌다.




(1) 한때 우리나라 가정의례 (차례, 제사, 장례 등)의 일부였던 화투놀이인 고스톱 게임의 용어. 한 번에 피 (껍데기)를 4장 먹어오는 횡재를 지칭한다. (똥, 비, 조커 등 쌍피 짜리 우선 내리쳐 먹고 까서 또 먹은 것에 해당한다)


(2) 우리 집안 전통 중의 하나는 절대 두 글자 넘는 중국 음식을 시키면 안 된다. 이는 곧 선택할 메뉴를 짜장과 짬뽕(젤 싼거) 국한 시키겠다는 아내의 의도이다. 그래서 탕수육이라고 하지 않고 항상 ‘탕슉’이라고 한다. 아들이 7살 때 발명해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때는 아들이 천재인 줄 알았었다.


(3) 우리 집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사실 반어법이다. 예를 들면 “간단하게 전이나 부치고 잡채 무쳐서 먹자” 라던지, “간단하게! 스파게티 하고 피자 정도... 아쉬우면 리조또 좀 곁들이고! 하는 정도의 뉘앙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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