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딱한 일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안타까운 일은 안 되는 줄 알면서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기웃거리는 것이다. 물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도끼로 나무를 찍을 때 이야기다. 도끼로 롯데 타워를 찍는 다던지 이쑤시개로 아름드리 거목을 아무리 콕콕 쑤셔봐야 의미 없다.
안 되는 줄 알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의 특징은 본인이 잘못되는 것은 물론, 반드시 주변 사람이 곤란은 겪는다. 집안 식구 중에 이런 아이가 있으면 온 집안의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가장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허황된 꿈을 좇아 세월을 보낸다면 온 식구가 고생하게 된다. 만일 국가의 지도자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살게 된다.
안 되는 줄 알면서 그래도 박박 우기면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을 우리는 한 사람 알고 있다.
자로가 석문에서 묵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로부터 오셨소?” 자로가 대답하였다. “공 씨 문중에서 왔소이다.” “그분은 안 되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걸 하고 계시는 분이 아닌가요?”①
뻘쭘한 자로의 모습을 생략한 이 표현은 『논어』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 중의 하나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솔직하지 않은가?
공자는 당시 시대 상황과는 맞지 않는 정치 논리를 가지고 평생을 헤매다 죽었다. 그 와중에 부인과 이혼하고 아들도 부인과 이혼하고 며느리는 다른데 시집갔다. (손자도 부인과 이혼했다) 말년에 이르러 서는 아들이 먼저 죽고 가장 사랑하던 수제자(안회)가 죽고 급기야 친구와도 같던 수제자(자로)마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겪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높이고 석문 문지기가 뭘 몰라 그런 것이라며 정치적 작업 멘트를 붙인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석문의 문지기는) 성인이 천하를 봄에는 훌륭한 일을 하지 못 할 때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공자를 조롱했다"②
공자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성인이라고 한 적이 없다. 제자들이 바람을 아무리 잡아도 절대 인정한 적이 없었다. 공자가 성인이라고 언급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뿐이었다.
그는 평소 학문을 좋아해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한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큰 스승이었으나, 그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키는 데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다만 후대에 죽은 그를 이용해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성인 놀이를 하려는 집단이나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