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길 위에서 살아온 나는 결혼하고 30년 가까이 한 달을 온전히 아내와 함께 지내본 기억이 없다. 항상 해외 어디론가 출장을 가야 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반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금년(2020년) 2월 홍콩행 항공권을 취소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긴 시간을, 내 의지는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필연성까지 무시되며 이동의 자유를 제약받고 있다.
항상 출장에서 돌아오면 좋은 얼굴로 반기던 아내는 시간이 갈수록 나에 대해 점점 심드렁해가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니라 워낙 머리가 큰 탓에 군대에서는 맞는 철모가 없었고 안경도 디자인보다는 크기에 맞는 것을 찾아 써야 하는 신체적 특징을 가진 내가 집 밖에 나갈 땐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역이다. 더운 여름에 남보다 큰 머리를 가진 내가 고무줄 달린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귀 뒤의 살이 물러져서 허는 지경까지 되었다.
2019년 년 말, 중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한 전염병의 공식적인 이름이 ‘코로나 19’로 정리되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은 그전에 겪어보지 못한 급격한 변화 속에 놓였고 여러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한숨 돌려 주변을 돌아보는 다소간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
돌림병은 우리에게 있어서 크게 낯선 대상은 아니다. 역병의 기록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역사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의서인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잡병 편(雜病編)에 계절병 전염병을 봄, 온역(溫疫) · 여름, 조역(燥疫) · 가을, 한역(寒疫) · 겨울, 습역(濕疫)으로 기록, 결국은 일 년 중 언제든지 집단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동의보감에서 언급한 돌림병 발생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사기(邪氣), 곧 나쁜 기운이 사람의 몸에 침범해 병을 일으키고 그것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나쁜 기운도 두 가지 종류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불결한 환경 즉 더러운 물, 썩은 짐승 고기, 시장의 불결한 환경, 또는 깨끗지 못한 부엌환경 등이 그 첫째이다. 또 다른 나쁜 기운은
관리의 고문과 악형으로 인한 고통과 원한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것으로 사회적 모순에 기인해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돌림병의 두 번째 이유는 시기병(時氣病)이라고 표현된 기후 관련설이다. 시기병은 겨울철에 추위에 몸을 상하는 등 스스로 조섭을 잘 못해 생기는 경우와, 더워야 할 여름 날씨가 서늘하거나 추워야 할 겨울 날씨가 따뜻한 경우 등에 발생한다(동의보감. pp 620-624)
불결한 물리적 환경,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정한 사회 환경, 계절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생활 그리고 이상기후를 돌림병의 발생 원인으로 언급한 동의보감의 견해는 지금 보아도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다.
동의보감을 찬찬히 읽어보면 ‘코로나 19’는 돌림병의 발생원인들과 반대로만 하면 극복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코로나 19’ 이후, 돌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우리의 삶의 방향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코로나 19’로 출근하는 날이 줄어들고, 안경을 쓴 채로 마스크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가급적 외출을 삼가다 보니 하릴없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항상 있었지만 외면했던 서가의 ‘장식용 책’에 슬그머니 손이 가게 됐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쥴리엣이 13살, 로미오가 16살 아닌가? 왜 그때의 나는 이 사실을 몰랐을까? 더욱이 그들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죽음이 5일 동안에 일어난 ’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20대 후반에 들어선 아이들이 데이트 가느라 단장하는 것이 예전과 달리 그렇게 밉지는 않아졌다.
10대에 읽을 때는, 어렵게 잡은 큰 물고기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상어에게 다 빼앗겨 버려 바보 같다고 생각되었던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50줄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는 존경스럽다는 생각으로 바뀐 내가 징그럽기도 했다.
왕에게 ‘하필왈리’ (何必曰利 - 하필 이익을 이야기하는가?)로 일갈해 후련했던 맹자는 지금에 와서는 왠지 좀 편협하고 경솔하게 느껴졌고, 고루하고 늦은 템포로 따분했던 논어는 오히려 중후하면서 나와 호흡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도 책과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 초기에는 ‘킹덤’ 같은 넷플릭스의 흥미 있는 필름을 찾아 여러 편을 한꺼번에 보면서, 나도 처해있는 돌림병의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재미있어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들은 강연에서 「인생 후르츠」 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낯선 일본 영화였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나름 지명도 있는 영화였다. 당연히 아내에게 영화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잊고 있었는데 20여 년 전 신혼 시절에는 아내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것이 주말의 중요한 일과였던 적도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후지하라 켄시 감독의 「인생 후르츠」는 90세의 할아버지와 87세의 할머니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일본 영화이다. 90분 동안 멍하니 영화를 쳐다보고 먹먹한 마음이 되었다. 충분히 교육받았고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삶(남들이 봤을 때)을 살 수도 있었던 쓰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히테코 할머니의 선택은 조용하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옳은 것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나를 준엄하게 질책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항상 새들이 마실 물을 채워 놓았는데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반드시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함께 한 번 더 봤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아내가 보자고 봤던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났다. 내친김에 다시 보기로 했다. 이 영화엔 아주 예쁜 우리 아이들이 나온다. 하지만 녀석들은 시험, 취업, 연애...... 뜻대로 되는 것들이 하나도 없는 녀석 들이다. 포기하고 방황하고 그러면서도 억지로라도 적응해 가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 들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무거운 현실의 짐을 지고도 밥을 지어먹고 탁주까지 걸러 마셨다. 그동안에 꽃도 피었고 비도 내렸으며 그냥 던진 토마토도 싹을 틔었다. 물론 겨울엔 눈이 왔다.
야근이다, 회식이다, 늦은 시각에 지쳐 들어와 쓰러져 자고 아침의 깔깔한 입 맛에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집을 떠나는 생활을 오래도 반복했다. ‘맛있는 집’을 찾아 점심을 해결하고는 음식의 맛보다는 유명한 집에서 먹어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고 지냈다. 다시 밤이 되면 불빛이 번쩍이는 거리의 어느 구석에서 고기를 굽거나 생선회를 즐기며 술을 마냥 마셔댔다. 집에 들어갈 땐 이미 아주 고단해졌고 그 고단함이 그날의 수고를 객관적으로 증명한다고 뿌듯해하기 까지 했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 고단 했으니 주말엔 빈둥거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믿었고, 그것은 가족 모두가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느린 삶’, ‘자연을 닮은 삶’은 이상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의 존재는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영화가 소비되는 것이고, 주말에는 햄버거나 피자 또는 치킨에 콜라를 마시며 그런 영화를 잠깐 소비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돌림병 덕분에 돌아갈 일상이 없어졌거나 제한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참으로 당황스러운 것이 필연(必然)이라고 믿었던 그 ‘일상’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선택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영화 속의 삶도 영화 속만의 삶이 아니라 고를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라는 점도 그렇다.
‘코로나 19’가 2019년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매우 편협한 시각일 수 있다. 또 ‘코로나 19’가 조만간 끝나고 우리는 다시 과거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코로나 20’, ‘코로나 21’이 이미 어디선가에서 꿈틀거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생각이 아닐까?
운동능력과 판단능력도 없는 바이러스는 그저 자연이 프로그램 한대로 생겨나 번식하려고 애쓰다 소멸할 뿐이다.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다른 종이 섞여있지 않고 빽빽하게 모여 바글바글하게 살고 있는 이상적인 숙주이다. ‘인간’들은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하며, 모여서 먼 거리를 바쁘게 이동하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전염의 경로로 사용할 수 있다면 매우 성공적으로 번식해 짧은 시간에 창궐할 수 있는 숙주이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같은 바이러스의 경우도 같은 환경의 숙주를 선택해 한 때 창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육되는 가축의 경우, 감염됐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개체는 살 처분하고, 강제로 이동을 통제하며 독한 소독약을 퍼부어 ‘처리’해 길게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없는 노릇이니 바이러스가 당분간 몰살을 당할 염려도 없다.
모든 것에 우선해, 필연적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본능처럼 익숙해졌던 삶이 갑자기 중단된 지 반년 넘게 지났다.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살았던 삶이 바이러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 된 것은 아닐까?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고 영화 몇 편을 며칠 사이에 보는 삶은 오랜 기간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다. 더욱이 평소라면 지루하다고 했을법한 영화들인데 그것을 찾아서 두 번씩이나 보다니 내가 뭔가 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 영화들의 공통점은 아무도 서두르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빈둥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바지런했다. 여름엔 여름처럼 살았고, 겨울에는 겨울처럼 살았다. 「인생 후르츠」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 내레이션 되었던 “고쓰 고쓰 윳꾸리"(こっこっゆっくり - 차근차근 천천히)가 자꾸 귓가에 맴도는 이유가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밥을 해서 같이 먹는다는 점이다. 근사하고 기름진 음식이 아니고 그저 제철에 근처엔 난 것들, 시장의 단골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것들로 그때그때 정갈하게 다듬어 특별하지 않게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찬찬히 보니 아주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나오질 않는다. 음식이라면 당연히 나올법한 비싼 한우 고기도 없고, 생선이라고 해 봐야 작은 토막 하나 정도이지, 무채를 양탄자처럼 깔고 색색의 맨살을 드러낸 ‘회’ 같은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먹는 사람들은 아주 맛있게 행복하게 밥을 밥처럼 먹었다.
‘코로나 19’는 우리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삶의 방식이 맞는 것인지? 다양성을 파괴하고 효율에 근거한 획일화가 정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얻은 풍요가 진정한 풍요이며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인지? 나에게 중요한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있어 ‘코로나 19’의 가장 큰 영향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하지만 잊지 않았어야 했던 것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함께 살아왔지만 하루 중 아주 짧은 시간만 함께 했던 ‘가족’ 이 지금은 같은 밥상을 자주 함께 하는 ‘식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먹는 밥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밥상머리’가 되었다.
매일 똑같아 보이던 밥상에서 계절이 보이기 시작했고, 밥상 위의 정갈한 음식에서 아내의 작은 손이 바쁘게 움직였던 흔적이 보이기도 했다. 봄이 깊어갈 무렵 나는 내 컵을 정해 하루에 컵 하나만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여름 가까이 와서는 슬그머니 설거지를 거들기 시작했다.
** 사진설명 : 위 사진은 출장길에 찍은 상해 홍치아오 고속철역(虹桥高鉄站) 사진이다. 바이러스가 보면 무척 행복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