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이다. 광화문에는 당연히 광화문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그런데 한때 우리나라 국보 1호였으며 서울의 정문 역할을 하던 남대문 현판에는 남대문이라고 쓰여있지 않다. 숭례문(崇禮門)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직역하면 ‘예를 숭상하는 문’이다. 즉 조선의 수도 한양은 ‘예를 높여 소중히 여기는 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었다.
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한양의 정문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물론 『논어』에서도 공자는 틈만 나면 예의를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예를 지키지 않고 나대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험한 뒷담화도 마다치 않았다.
공자께서 계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팔일무를 뜰에서 추게 하다니, 이 자를 참고 보아 넘길 수 있다면, 그 누구를 참고 보아 넘길 수가 없겠는가?”①
팔일무는 여덟 명이 여덟 줄(64명)로 서서 추는 천자의 의식이다. 제후는 육, 대부는 사일무로 신분에 따라 정함이 있었다고 한다. (출처, https://vo.la/iNDFB)
여기 나오는 Mr. 계는 대부 신분인데, 천자의 팔일무를 자신의 집 뜰에서 추게 했다. 이에 대해 공자가 분에 넘치는 외람된 짓을 했다고 Mr. 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직접 가서 야단치지 못하는 이유는 공자가 계씨보다 낮은 신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보통 이 구절은 ‘예(禮)를 지키지 않은 권력자를 비판하는 공자님’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예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권력자’로 보인다. 예를 어기는 백성은 짐승만도 못한 비판받을 대상이지만, 권력자들에게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예는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행동 윤리가 아닌 것이다. 예는 사람을 신분으로 나누고 그 신분에 맞는 역할을 부여해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정치사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주체성과 개체성이 존비귀천의 신분적 명분 속에 녹아들어 사라지고, 이에 따라 인륜 관계의 네트워크가 개체의 독립적 가치를 대신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주인 근성과 노예근성’의 형성, 즉 인간의 자유 의식 상실은 이런 설계 방식의 필연적 결과다.②
쉽게 말해 사람을 신분으로 구분해 놓고 각 신분에 맞는 행동 규범을 만든 것이 예이다. 그 예가 행해진 결과, 인간의 자유 의식은 상실되었고 행복한(편안한) 노예가 되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쨌든 그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는 근대 질서 편입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좀 다르다. 헤겔의 통찰이다.
중국은 가장 오래되었지만 또 역사가 없는 나라다.
이 나라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고대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③
중국은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를 타도하고 민주정치를 수립할 듯하더니, 다른 황제가 즉위했다. 황제에 등극한 원세계는 충, 효, 절, 예 등의 ‘노예 도덕’을 강조하였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상소를 올려 공교(孔敎-공자교)를 국교로 정하고 헌법에 삽입할 것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중국은 공교 대신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민주’가 헌법에 삽입되었다. 그리고 황제 대신에 공산당 총서기가 통치한다. 물론 충, 효, 절, 예, 신 등등 과거 강조되던 도덕규범은 당연히 매우 강조되고 있다. 지금도!
예를 강조하는 중국의 거대한 입간판. 우리나라에서 지방 정부 예산으로 이런 거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예를 지켜야겠다'라고 결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중국엔 있다.
그래서 “중국은 큰 산이고 우리는 작은 산”이란 말은 틀렸다.
우리와 중국은 다른 산이다!
대문 그림 : 남대문 현판이다. 분명히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쓰여있다. (출처, 구글검색, 검색일, 2023.4.27.)
①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 36.-37.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孔子謂 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② 왕후이 지음, 송인재 옮김 『절망에 반항하라』 2014. ㈜글항아리. 경기, 파주. pp. 24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