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유능한 엘리트 군인이었던 남이 장군은 한 글자를 위조한 유자광의 모함에 의해 처형되었다. 어릴 적 위인전을 읽다 하도 분해 아직도 기억하는 구절이다. 남이 장군이 변방의 여진족을 평정하고 백두산에 올라 읊었다는 시구이다.
백두산 숱한 돌, 칼 갈아 다하고
두만강 푸른 물, 말 먹여 다했다.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케 못한다면
뒷날 어찌 대장부라 불리겠는가?
유자광이 장난친 부분은 “나라를 평안케못한다면 (未平國)”이다. 요걸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未得國)”으로 바꾼 것이다. 유능한 젊은 엘리트 군인이 순식간에 대역죄인이 되는 순간이다.
남이 장군 무신도이다. 억울하게 죽은 무장은 가끔 신앙의 대상이 된다. 최영장군, 임경업장군이 그렇다.(출처https://vo.la/7CXJE, 재인용. 검색일.2023.4.29)
15세기 후반부터 대두된 권력형 비리의 척결을 시도했던 젊은 개혁가 조광조도 의도를 가진 교활한 참소의 희생자가 되었다.
당시 조선엔 지진이 잦아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때 대궐 안에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나뭇잎이 여럿 발견되었다. 주초(走肖)를 합치면 조(趙)가 되니, ‘조 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 된다. 결국 이 벌레의 먹이활동 흔적은 ‘하늘이 역모를 드러냈다’는 소재로 활용돼 결과적으로 70여 명이 처형되게 된다.
인하대 연구팀이 '주초위왕'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큰 나뭇잎이 별로 없고, 벌레의 수명이 길지 않아 잘 안된다고 한다. (출처, https://vo.la/cS2)
엉뚱한 상상일지 모르지만 『논어』의 다양한 주석을 읽다 보면 의도를 가지고 『논어』를 왜곡한 경우를 자주 만날 수 있다. 물론 순수한 학문적 견해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공자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논어』의 권위에 기대 자신이 의도한 바를 추구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속상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공자가 자공에게 “너와 안회 가운데 누가 나으냐?”라고 말하자,
자공이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그만 못하다. 나와 너는 그만 못하다”라고 하였다.①
스승인 공자가 돈 잘 버는 Businessman 제자인 자공에게 물었다. 자공과 한 살 차이 나는 동창 안회와 너 중에 누가 더 나으냐? 공자의 질문이 짓궂고, 사람을 약 올리게 만드는 톤이라는 주석가도 있다.② 틀리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자공은 흔쾌히 안회가 낫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도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안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운을 남긴다.
그러자 공자는 자공과 자신을 함께 묶어 안회보다 못하다는 절묘한 마무리를 구사한다. 참으로 격조 있는 스승과 제자의 뒷담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딱 한 군데 띄어쓰기를 바꾸어 해석하면 전혀 엉뚱한 해석이 된다.
공자가 자공에게 “너와 안회 가운데 누가 나으냐?”라고 말하자,
자공이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너는 그만 못하다는 것을 허여 한다.”라고 하였다.
그 위대한 공자님이 어떻게 제자보다 못할 수 있으며 제자와 같은 레벨이 될 수 있는가? 그러니 ‘너와 나 (吾與女)’로 해석하면 안 되고 ‘나는 너에게 허여 한다(吾, 與女)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朱子)의 해석이다.
이렇게 되면, 공자는 처음부터 냉소적인 질문을 제자에게 던졌고, 제자의 상처에 소금을 확 뿌리는 잔인한 사람으로 바뀐다. 인간미 없는 권위자, 제자를 서열화하는 냉정한 학문 권력자의 모습이 아닌가?
나는 이런 주자의 의도된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건방진 이야기이지만 『논어』를 읽다 보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공자의 말투’를 느낄 때가 있다. 이 구절도 그렇다.
공자는 마음속 깊이 제자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지고, 슬쩍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자는 스승의 기대보다 훨씬 핍진한 대답을 했다. 이에 공자는 기꺼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쯤 되면 사제 간에 술상을 마주하며 2교시 시작하기 더 없는 분위기다. 물론 주자는 부르지 말아야 한다.
대문 그림 : 이 편의 『논어』구절 전문이다. 왼쪽부터 위에서 아래로 읽어야 한다. (출처, https://vo.la/Sxqs7.검색일, 2023.4.29.)
①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이기동, 임옥균, 임태홍, 함현찬 옮김 『논어징(論語徵) 1』 소명출판. 서울. 2010. p.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