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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두교주 Oct 01. 2023

자유의 여신상

Dustbusters

  그날의 상황은 조금 묘했다. 조명 공사와 청소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었다. 조명 공사는 거실에 등을 다는 것으로 늦은 오전에 설치한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청소를 시작했다.      


  점심때 가까운 무렵 그가 나타났다. ‘대단한 카리스마’. ‘엄청난 기술자의 포스’를 느꼈다. 비대한 몸집에 여러 전동 공구를 거느리고 보안경을 쓰고 수염까지 기른 그분은 우리와는 다른 전문가적인 강열 한 기(氣)를 발산하는 듯했다. 나는 뜬금없이 자유의 여신상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를 자유의 여신상으로 명명하고 부러워했다.     


비대한 몸집, 보안경에 턱수염을 기른 카리스마 충만한 그는 자유의 여신상 같았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감정은 열등감 같았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에 와서 조명일을 배울 것도 아니고, 청소나 열심히 하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청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부터 이상한 중얼거림이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한, 두 번은 무심코 지나치다가 여러 번 반복되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아! 미치겠네, 아! 미치겠네”     


  그리고 잠시 후 다소 소란스러워지더니 고객님의 안타까운 외침과 자유의 여신상의(강렬한 포스에 어울리지 않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전화를 쓸 수 없으니 빨리 119에 연락해 주세요!!”      


  그리고 바로 집안의 모든 전기가 나가버렸다. 밖의 상황이 궁금해서 거실로 나갔다. 자유의 여신상은 한 손엔 공구를 들고, 다른 한 손은 뚫어 논 천정에 넣은 채로 의자 위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리고 천정 안에 들어간 손을 타고 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천정은 바로 전날 실크 벽지로 새로 도배했었다)     


그 당당해 보이던 자유의 여신상은 이렇게 망가졌다.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것은 자칭 ‘노가다의 황태자’ 인진우였다. 그는 민첩하게 양동이 두 개를 자유의 여신상이 올라간 사다리 발치에 두고, 천정의 손을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양동이 쪽으로 유도했다. 자유로워진 조명 기사님은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동작으로 밖으로 나가 수도를 찾아 잠그느라 허둥댔다. 이제 전기에 이어 수돗물도 끊긴 집이 된 것이다.     


  ‘노가다의 황태자’ 인진우의 분석에 의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조명 기사님은 전등 설치를 위해 천정에 아무 생각 없이 구멍을 뚫다가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수도관을 파손시켰다. 그러자 물이 터져 나왔고, 손으로 수도관을 잡아 막고, 해결 방법을 강구했으나 실패한 것이었다.      

  한 손으로 터진 수도관을 잡고 있었지만, 물은 찔끔찔끔 새어 나와 천정의 실크 벽지와 아트월을 오염시키고, 천정 안으로 점차 번져가 감전의 위험성까지 증대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수도관을 잡은 팔은 점점 아파오고 무거운 공구를 내려놓을 방법도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전기와 물이 없는 상황에서 일을 더 진행하기는 힘들고, 얼추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그사이 119가 출동해 누전의 위험을 처리했고, 다른 조명 기사들이 와서 전기 관련 작업을 하고, 도배하시는 분들이 부분 도배를 검토하며 사태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스름이 깔린 무렵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자유의 여신상은 정중히, 그러나 생각보다 무척 천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고객님께 사과하고 있었다. 고객님도 침착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로 문제 해결에 끝까지 애써주고 변상을 깔끔히 마무리한 자유의 여신상을 위로했다.     




  그는 너무 카리스마 있는 멋진 모습으로 등장했고, 그의 장비는 지나치게 압도적이었으며 그 장비가 내는 우렁찬 소리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러나 한 팔은 천정에, 한 팔은 장비를 쥐고 다급하게 내는 그의 외침과, 수도관을 잠그기 위해 뛰던 빠른 동작, 그리고 착한 학생과 같은 맑은 눈으로 사과하는 그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우리는 덕분에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일을 끝낼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 싫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턱이 얼얼하고 배가 땅기는 듯한 느낌은 너무 웃어서 그런 것 같았다.



대문그림 : 진짜 자유의 여신상 (출처 : 구글 검색)

본문 그림 2장은 AI(DALLE)를 이용해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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