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stbusters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화단에 물 주는 일은 어리석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말거나 반드시 화단에 물을 줘야 한다는 절대 존엄이 존재한다면 비가 오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 없이 화단에 물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중국과 북한은 비 오는 날 화단에 물을 준다. 태풍이 불면 우비라도 입고 물을 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중국이나 북한과는 달리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화단에 물 주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그들과 같아지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그들과 같이 생각이 없어진 사람도 적지 않다. 이삿날 청소가 그 좋은 예이다.
이사를 하면서 나는 몇 가지 매우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떠나는 집의 청소를 꼼꼼히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떠날 집이라는 심산이다. 그런데 잠시 후 이사 들어갈 집에 도착한 후에는, 떠난 사람의 청결하지 못함에 혀를 찬다. show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래서 이사 들어가기 전에 전문 청소업체를 열심히 찾아 돈을 주고 청소를 의뢰한다. 이것이 '이사 청소'다. 그러면 전문 청소업체는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청소를 진행한다. 화장실의 물기를 깔끔히 말리고 수도꼭지를 깔끔히 닦고 손잡이와 꼭지를 일치시키며 샤워기를 예쁘게 걸어 놓는다. 그리고 거실은 물론 방마다 바닥을 말끔히 닦아놓는다. 당연히 청소를 의뢰한 고객은 매우 행복해한다.
그다음엔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옮겨 오는 이삿짐들은 청소한 집만큼 깨끗하지 않다. 당연히 말끔히 닦인 바닥은 쉽게 더러워진다. 그것들을 닦기 위해서는 물을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반짝이던 수도꼭지에는 물인 튀게 된다. 이사와 청소에 고된 몸을 씻고 나면 이삿짐에 들어오기 전 그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삿짐 들여놓기 전에 잠깐 행복하기 위해 show를 관람한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이사 청소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머문 자리를 말끔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삿짐을 쌀 때는 쓰다 만 휴지 하나까지 챙겨가면서 내 삶의 흔적들은 이곳저곳에 남긴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 몸의 피부는 1분에 25,000개, 한 시간에 100만 개가 넘는 피부 조각(squame)이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이는 해마다 500그램의 피부가 먼지가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털이 안 빠지는 것 같지만 우리 몸은 입술, 젖꼭지, 생식기 그리고 손, 발바닥을 제외하고는 온몸에 털이 있다.① 바꾸어 말하면 내 피부 먼지와 털이 집 곳곳에 있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나의 털과 내 피부의 일부를 보고 ‘더럽다’며 진저리를 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짐을 들어낸 자리, 욕실의 배수구, 주방의 배수구와 싱크대 내부 그리고 신발장은 꼼꼼히 살피고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좋다. 만일 누군가 나의 털과 내 피부의 일부를 보고 ‘더럽다’며 진저리를 치는 것을 원한다면 그대로 둬도 좋다.
옮길 짐들을 점검하고 깨끗이 하는 작업이 그다음이고, 이사 청소는 그다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갈한 내 물건들이 말갛게 청소된 자리에 놓일 수 있고 다음 날부터는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상을 지낼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이사 청소를 진행하게 되면 일반적인 청소가 미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곳을 지향하게 된다. 서랍을 모두 빼 그 안의 먼지를 제거하고 싱크대 밑바닥을 열어 묵은 먼지를 몰아내는 식이다. 이삿날 미처 보기 힘든 전등 안쪽을 닦고 선반 위 먼지를 털고 창고 안쪽의 묶은 때를 벗겨 내는 것이다.
동시에 집안의 모든 시설물에 대한 점검을 진행할 짬을 얻게 된다. 벽지와 바닥, 각종 스위치와 고정 부착기구의 작동상태, 창과 창틀, 손잡이 등을 꼼꼼히 살펴 문제가 있는 것을 정리할 수 있다.
떠난 자리를 맑게 비운 후에, 들어갈 공간을 세심히 살피고 깨끗하고 쾌적하게 하기 위해 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이사 청소의 모습이다.
대문 그림 : AI(DALLE. 2023. 10.09)가 그린 그림이다. 명령어는 A person using an umbrella and watering a flower bed on a rainy day이다.
① 빌 브라이슨(Bill Bryson), 이한음 옮김. 2020. 『바디. 우리 몸 안내서. THE BODY. A Guide for Occupants』 까치. pp24.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