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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두교주 Oct 10. 2023

손 없는 날

Dustbusters

  누구나 이사할 때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말이 ‘손 없는 날’이다. 이날은 좋은 날이고 다른 날은 그렇지 못하다는 뜻으로 들 알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손 없는 날’이 언제인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손’이 뭔지, 없으면 뭐가 좋은 지도 잘 모른다.     


  나는 『주역』은 물론 여러 도가 경전, 불교 경전, 그리고 성경을 꼼꼼히 읽어 보았지만 ‘손 없는 날’을 언급한 구절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유품 정리’를 한다는 친구의 책에서 그 뜻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사업계의 대목, 손 없는 날의 뜻은 아래와 같다.     


  은 손님의 줄인 말로 동서남북 네 방위로 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귀신이라고 합니다     


이 귀신은 음력 날짜 끝수에 따라 초하루초이틀은 동쪽초사흘초나흘은 남쪽초닷새초엿새는 서쪽초이레초여드레는 북쪽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각 날짜에는 해당 방향의 이사를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날을 제외한 나머지 9일과 10일 양일간 귀신은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날이 바로 손 없는 날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하늘로 올라간 귀신은 이틀을 푹 쉬고 나서 11일이 되면 다시 내려와 12일까지 동쪽부터 시작해 이틀씩 각 방향 따라 돌아다니는 악귀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다시 손 없는 날을 만들어주기 위해 19일과 20일 하늘로 올라가기를 반복합니다.     




  주 5일 근무를 하는 우리가 순(旬 - 10일) 일 근무하는 귀신이 무섭다고, 그 귀신이 없는 날을 기다려 이사를 한다! OECD국가인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믿기 대단히 어렵다.   

  

  설령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10일 중에 손 귀신이 지상에 있는 8일간을 조심할 게 아니라 2일만 조심하면 된다. 예컨대 귀신이 동쪽에 가는 날(1, 2일)은 동쪽만 조심하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날 손 귀신의 나와바리는 동쪽이니, 서, 남, 북은 안전하다.      




  그런데 자칭 조상 중에 무당이 계셨다는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의 ‘손 없는 날‘ 이론은 보다 혁명적이었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 귀신은 1에서부터 8까지는 셀 수 있는데 9, 10은 못 센다고 한다. 그래서 9일 10은 ’ 손 없는 날’이 된다는 것이다.      


  이 학설이 맞는다면 최소한 두 가지 반론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있어야 한다. 첫째, 이 귀신이 1에서부터 8까지밖에 못 센다면, 11일 이후 말일까지는 모두 free 아닌가? 둘째, 우리는 보통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배운다. 구구단을 하려면 무려 81까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귀신은 초등학교 2학년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무서워하지?     


  물론 옛날부터 내려오는 (그게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터부(taboo)를 지켜서 나쁠 것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발상이 아직도 이런 정신 연령 낮은 귀신의 영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날을 고르기 위해 여러 요인을 차분히 살피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손 없는 날’은 그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     




  자칭, 타칭 ‘육효점의 대가’라는 내 입장에서 볼 때 ‘손 없는 날’의 현대적 의미는 다른데 있다. ‘손 없는 날’은 항상 '손' 바쁜 그분을 쉬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산책을 함께 할 일이다. 이날은 달빛도 적당하고 노닐기도 아주 그만이다.       



대문 그림 : 핼러윈 데이 무서운 귀신 손 팝콘. (출처, https://zrr.kr/Eb73 검색일, 2023. 10. 09) 네이버에 손 귀신을 검색하면 전부 흉측한 손(手) 모양의 이미지만 나온다. 하지만 '손 없는 날'의 손은 덜 손(損) 즉 손해를 뜻하는 글자를 쓴다. 살수 대첩은 물뿌려 승리한 것이 아니고 홍익인간은 얼굴이 빨간 인간이 아니다.


① 김석중 지음.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 지택코리아. 부산, 동구. 2018. p.125.     


② 미개한 사회에서 신성하거나 속된 것, 또는 깨끗하거나 부정하다고 인정된 사물ㆍ장소ㆍ행위ㆍ인격ㆍ말 따위에 관하여 접촉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거나 꺼리고, 그것을 범하면 초자연적인 제재가 가해진다고 믿는 습속(習俗)(출처, 네이버, 검색일, 2023.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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