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신(神)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로마의 신들,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일본 신사의 수많은 위패들, 삼신할머니, 무당이 모시는 장군 신 등등.......
난 종교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각자 믿고 싶은 걸 믿는 것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간혹 묘한 존재를 만나기도 한다. ‘수호성인(守護聖人)’이 그 예이다.
수호성인은 천주교에서 ‘특정한 개인·단체·지역·국가·교구·성당 등의 보호자로 받드는 성인’①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따로 돈을 낼 필요도 없고 시간을 내서 경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와 같이 호모 사피엔스로 살다가 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직업에 두루 걸쳐있다. 가정부, 웨이터의 수호성인은 성 지타이고, 경찰의 수호성인은 성 미카엘 대천사와 성 유다 타대오다. 단추 제조업자의 수호성인은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며 벽돌공, 채석공의 수호성인은 성 스테파노이다. 이뿐만 아니라, 양조업자, 장의사, 전당포 주인, 짐꾼, 야간경비원 등등, 수호성인이 없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동물의 수호성인도 있다. 예를 들면 닭의 수호성인은 성 갈로, 성녀 파라일다이다)②
그런데 천주교에 청소인의 수호성인은 없다. 하지만 청소의 수호성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분은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고, 당시 바티칸은 이분이 살던 나라의 존재조차도 제대로 몰랐으니, 당연히 수호성인 데뷔는 어려웠으리라 짐작한다.
청소 인의 마땅한 수호성인은 이순신 장군일 수밖에 없다. 그는 그가 항상 패용하던 장검 두 자루에 청소 인의 사명을 새겨놓았다.
석자 길이 (빗자루)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진동하고
한번 휘둘러 쓸고, 씻어 버리니 산하를 붉게 물들인다.④
사실 이순신 장군의 인생 자체가 탁월한 청소의 삶을 살았다. 그는 거북선 앞세우고 일본의 침략군을 깨끗이 ‘청소’한 당사자이다. 우리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의 탁월한 청소 전략과 지속적인 청소실행, 그리고 당분간 더 이상의 청소가 필요 없는 치밀한 마무리에 있는 것이다.
그는 거북선은 물론 천자총통을 비롯한 다양한 청소 신장비를 개발했고, 수군통제사 본영을 중심으로 강력한 상비 청소인력의 육성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더욱 본받을 점은 그는 자신의 부하에게 엄한 만큼, 자신의 부하를 부당한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쯤 되면 청소인의 수호성인으로 이순신 장군 이상의 적임자는 없다.
틈이 나는 대로 밀대 자루, 스퀴즈 자루, 약품 통 등에 ‘청소인의 사명’을 쓰며 자칫 흩어지기 쉬운 마음을 잘 다잡을 일이다.
지금 이 세상 청소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크게 휘둘러 쓸어버릴 많이 배운 못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문 그림 : 한산대첩의 상상도이다. 청소인의 수호성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청소하기 위해 학익진을 펼친 모습니다.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 제3 국의 포털에서 검색한 결과이다.(출처 : https://buly.kr/DwB1sSY , 검색일. 2023.12.5)
① Naver 검색. 검색일 2023.10.14.
② 한국 출신 수호성인도 있다. 이문동·이태원 성당은 성 안드레이 김대건이 수호 성인이다.
③ 본문은 다음과 같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일반적으로는 석자 길이 ‘칼’에 맹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원문에는 빗자루란 말도 없지만, 칼이라는 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