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처럼 어두운 공간에 어쩌다 한 줄기 빛이 지나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춤추듯 움직이는 먼지를 볼 수 있다. 공기 중에 떠 있던 먼지들은 2시간 정도 지나면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①
그뿐만 아니라 먼지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도 기어들어가 도사리고 있다. 서랍의 깊은 곳, 모처럼 열어본 연장통, 심지어 오랜만에 집어 든 신발장 신발 밑에도 어김없이 옹송거리고 있다.
그리고는 서로 모여 딱딱하게 굳기도 하고, 곰팡이들과 어울려 슬금슬금 기어 다니기도 한다. 물을 만나면 여지없이 쓸려나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틈에 물과 깐부를 맺어 물때가 되기도 한다.
청소는 기본적으로 먼지를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다. 먼지를 '제거'하고 때를 '벗겨내며' 오염을 닦아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는 굉음을 울리며 청소기를 돌리고, 화학약품으로 때를 녹여내며, 힘주어 걸레질을 하며 닦아낸다. 그리곤 개운한 마음에 흡족해한다.
하지만 그 순간, 어디서 왔는지 먼지는 다시 공중에 가득 차 나풀거린다.
먼지는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이 옳다. 그저 공중에 나풀거리다 바람 따라 몰려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서 먼지는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터는 것이고 때는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는 것이며 오염은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녹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공기를 바꾸어 주는 일이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환기(換氣)라고 한다. 이때 묵은 먼지는 몰려든 새로운 기운에 쓸려나가게 된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안에서부터 밖으로, 자리 잡은 녀석들을 털어 일으켜 알지 못할 곳으로 전송해야 한다.
이러한 먼지의 속성을 가장 먼저 간파하고, 인간의 운명과 연결시켜 위대한 가르침을 설파한 이가 부처이다. 불교의 소의경전이라는 『금강경』에서도 먼지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여래란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 이름하니라②
『금강경』제29분 「위의 적정분(威儀寂靜分)」에 나오는 구절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마음에 착 감기는 시적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③
부처가 가고 나서 2500년이 지나 나타난 이 유행가 가사는 정확히 『금강경』의 다른 버전이다.
여래를 인생으로 바꾸었다.
우리의 인생이여!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어디론가 가는 바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아름다운 삶이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어찌 창조와 종말을 운운하랴!④
하지만 주어를 먼지로 바꾸어 놓으면 정확히 먼지의 속성과 일치한다. 그럼 여래가 인생이고 인생은 먼지가 된다. 그러면 『금강경』은 『인생경』이고『먼지경』이나 『티끌경』이다.
청소를 하면서 몸이 고단해질수록 마음은 텅 비어 가는 것을 느낀다. 그 텅 빈 맑은 마음에 나풀나풀 먼지가 까불고, 밝은 부처의 뒷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의 또 하루를 산다.
우리는 풍진(風塵)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풍진은 바람(風)과 먼지(塵)이다. 편하지 못하고 어지럽다는 의미다. 그런데 평생 무소유를 주장하고 실천했던 법정(法頂) 스님은 “금강(金剛)의 큰 지혜로써 이 어렵고 험난한 풍진 세상을 무난히 헤쳐 나아가기를.”⑤ 기원했다.
① 이응준 지음 『청소학 ❲일반 편❳』 도서출판 더로드. 경기. 고양. 2021. p. 46. 외에도 여러 군데 같은 내용이 있다. 이 책의 정가는 33,000원이다. 하지만 이 책은 1000원이 넘으면 절대 안 되는 책이다. 이 책만큼 심하게 ‘복붙’이 되어있고 틀린 글자가 많은 책은 다시 만나기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② 무비(無比) 지음 『무비 스님 금강경 강의』 불광출판사. 서울. 1994. p.266. 원문은 다음과 같다.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命如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