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력도 능력일지도
가.
가가.
가가가.
가가가가.
가가가가가.
이게 무엇일까? 읽는 방법에 따라 단어일 수도 문장일 수도 있다. 아마도 단어일지도 문장일지도 라고 하는 이 외계어를 곧바로 이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답은 마지막에)
어찌 저찌 설명하려고는 하지만 사실 글로 설명을 잘 하기가 어렵다. 아마 풀어쓴 답을 보고 이해가 가는 듯 하면서도 갸우뚱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의 고향, 경상도 지역의 억양을 사용해서 읽어야 하는 사투리이다. '표준말'.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쓰고 보니 저 표준말의 정의를 국어시간에 달달달달 외웠던 기억도 난다. 표준말을 안쓰면 교양이 없는 것이었나. 나는 대학교를 서울로 오면서 사투리를 고쳐썼다. 서울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쓰면 교양있어 보일 것 같아서? 부모님이 어부시냐는 농담을 듣기 싫어서? 인생의 절반은 부산에서 그리고 어느새 그 기간 가까이 서울 수도권에서 살아버린 나는 두 지역의 언어를 넘나들며 구사하고 있다. 수도권의 공기를 마시면 서울말을, 부산의 바닷공기를 마시면 부산말을 사용한다. 티가 안 날 수는 없겠지만 예의상 하는 빈말인지는 몰라도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도 이제는 꽤 있다. '어머, 사투리 안 쓰시네요?' 여기에 나는 왜 뿌듯해했던거지?
요새는 오히려 사투리를 알아듣는 내가 뿌듯하다. '만다꼬', '쎄가 빠지게', '그래쌌노'. '마, 여 안자가 밥이나 묵고 가라.' 쓰면서 읽어보고 쓰면서 들어본다. 제대로 써진건가. 살짝 긴가민가하고 있다.
아래는 또 예전에 썼던 글 옮겨보기. 사실 오늘도 오늘 읽은 '경상의 말(유유)'를 읽다가 저 '가'만 외쳐대는 외계어에 꽂혀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또 쓰다보니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함께 엮어 이어 써보았다. 삶에 지친 어떤 이가 만난 산골판타지이다. 나의 사투리력이 글쓰기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던 그 날의 글을 부끄럽지만 공유한다.
대나? 고마 마 암씨롱도 생각 안하고 밥심으로 사는기제
"뭐라카노? 마 고마 일로 앉아가 밥이나 쳐무그라."
제가 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 들은 말입니다. 이 곳은 경상도의 나도 모르는 산골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이 할머니(93)에게는 처음보는 어떤 누군가도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나 봅니다. 그저 밥 한 끼 맛있게 먹고 가면 되는 곳인가 봅니다. 가던 길을 잃어 우연히 들게 된 산골 마을의 이 할머니는 늘상 보던 사람을 만난 듯 자신의 평상을 내어주고 자신의 숟갈을 내어줍니다. 가려던 길을 잃어 들어온 자도 인생의 길을 잃어 들어온 자도 이 곳에서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나봅니다. 봄에 온 자에게는 냉이를 듬뿍 넣은 된장국과 달래를 듬뿍 넣은 달래간장과 함께 고봉밥 산나물 상을, 여름에 온 자에게는 시원한 열무국수 한 그릇과 바삭한 두릅튀김을, 가을에 온 자에게는 여름 무로 달큰하게 끓인 든든한 경상도식 빠알간 소고기뭇국, 겨울에 온 자에게는 토종닭 백숙 한 솥 푸욱 삶아 튼실한 닭다리가 들어있는 한 뚝배기를 무심히 툭 던져줍니다.
"다 뭇나? 그라믄 이제 저짝 가서 좀 디비 누버있으라. 뭐 할 기 엄스면 저짜 밑에나 한 번 갔다 오든가. 시원하게 발 한번 담가삐고 오면 좋다 안카나. 귀찬쿠로 여서 이라지 말고 가따 온나."
이 곳은 한끼 밥을 먹고 계산을 하고 식당 옆 계곡에 앉아 계절을 즐기는 그런 계곡 옆 산장식당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할머니의 말대로 계곡 물에 발을 살짝 담그고 앉아있으면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그들에게도 나는 그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있는 사람입니다. 처음보는 사람인데 이 또한 아무 상관이 없나 봅니다.
"도시 이모야, 정구지 찌짐 좀 드실라예? 방금 부쳐가 억수로 맛있는데"
"여 막걸리도 있는데 한 잔 할라예?"
물론 바로 내려갈 계획은 아니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덥썩 막걸리 한 잔을 받아들기에는 이곳은 제게 낯선 곳이었습니다. 어버버하는 사이 제 옆의 넙적한 바위 테이블 위에는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달짝지근한 막걸리 한 잔과 향긋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추전이 한 장 놓였습니다.
찾으려 해도 억지로 찾을 수 없는, 다시 찾고자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이 곳은 삶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곳입니다. 어쩌다보니 네 번의 계절을 이 곳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세상의 그 어떤 누군가도 그 어떤 상황들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저 맛있는 제철 밥상을 즐기고, 그저 허허실실 계곡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벗삼아 앉아있다보면 "뭐라카노, 다 그래 흘러가는기제." 라는 할머니의 말이 차분히 내 안에 스며들게 됩니다.
"인자 니 가라. 내 밥 그만 쳐무으라."
할머니는 이제 가라고 하십니다. 가야 할 때인가 봅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옵니다.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문득 무심하게 식사가 끝날 때 쯤 숭늉을 툭 하고 던져주시던 할머니 손이 생각납니다. 한 번 더 잡아드리고 올 것 그랬습니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올라가 봅니다. 하루는 하루쯤만 더 있다 가지 뭐.
그런데 아무리 올라가도 할머니의 집이 보이질 않습니다. 내가 오래토록 앉아있던 계곡 의자와 넙적한 바위테이블은 보이는데 할머니의 집이 보이질 않습니다.
"가라캤뜨만 와 또 올라오고 지랄이고, 이제 니 줄 밥 없다카이."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 사이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그리고 '가'만 외쳐댔던 까마기울음소리의 정답. 어디서 끊고 어디서 올려읽고 내려읽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가능하다. 주변에 경상도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달라 부탁해 직접 들어보고 설명 들으시길.
1. 가
(어디론가) 가!
그 아이?
2. 가가
그 아이야?
그 아이가....(어찌어찌 했어)
가지고 가.
(어딘가에) 가서
3. 가가가
성이 '가'씨니?
가지고 가서
그 아이가... 그 아이야?
4. 가가가가
그 아이가 그 아이야?
그 아이가 '가'씨야?
5. 가가가가가
그 아이가 '가' 씨야?
그 아이가 가지고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