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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Nov 25. 2021

자학의 카타르시스

건강하게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

메마른 살갗이 찢기는 기분이다. 겨울이 되어 푸석하게 갈라진 피부에 그립제를 뿌린다. 두 눈이 일그러질 정도로 질끈 감았다. 거꾸로 매달린 채 혼자서 버텨내야만 했다. 차가운 봉에 믿을 거라곤 내 왼쪽 다리 하나뿐이었다.


폴 댄스를 시작한 지 만으로 열한 번째 달이 지났다. 상상했던 것보다 오랫동안 다녔구나 싶었다. 그동안 실력도 늘고 근력도 늘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못한 동작들이 있다. 봉 타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퇴근 후 짬 낸 짧은 시간 안에서 연습, 또 연습을 해본다.


나의 살들은 봉에 짓이겨 산 채로 찢기듯 아프다가, 벌겋게 불타듯 부어오르다가, 지금은 손 대면 살갗이 쓰라리듯 아프다. 마치, 자학을 한 기분이다.


마치, 자학을 한 기분이다. 그게 가끔은 살아있고 흥분되는 걸 보니 도라이임에 틀림없다. 약간의 우울증세가 없지 않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처절한 나를 더욱 처절하게 몰아세우며, 죽을 것 같아요, 날 좀 봐줘요 정말 처절하지 않나요?라고 외치는 그런 거 말이다. 마치 툭 치면 터질 것처럼.


차마 뛰어내릴 순 없었다. 뛰어내리기엔 용기도 없었고, 진짜로 죽으면 죽은 나를 보고 안타까워할 사람들을 보지 못하니까. 그리고 죽기에는 못해보고 간 것들이 많아서 태어난 게 아깝기도 했다. 뭐,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린 나의 마지막 교시는 끝나 있었고, 해는 뉘엿뉘엿 집으로 갈 때를 알려주었다.


어렸을 때 우울의 해소 방법으로 선택했던 건, 그림이었다. 예술가에게 어두운 감정은 양날의 검과 같지 않던가. 엄청난 예술의 영감을 주거나, 죽거나. 작고 두꺼운 노트는 나만의 비밀공간이 되어 우울하고 슬퍼하는 격렬한 감정들을 극단적으로 풀어내었다.


파도처럼 수도 없이 쳐대는 현실에 적응해야 하다 보니 그림은 어느새 글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내 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에 힘이 없으면 글이고 나발이고 아무 생활도 잡히지 않았다. 여러 가지 사적인 갖은 이유와 의미를 갖다 붙이며 새로이 시작하게 된 나의 취미 폴 댄스.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건 '악'이었다. 악. 메마른 살갗이 찢기도록 아파도, 두 눈이 일그러질 정도로 질끈 감겨도, 거꾸로 매달린 채 악바리로 버텼다. 아프다, 죽을 듯이 아프다. 멍든 허벅지를 보며, 날 좀 봐줘요 정말 아플 것 같지 않나요?


누가 봐도 아픈 고통에 희열을 느낀다. 이렇게 아파도 버텨냈고, 어떻게든 기술을 구사했고, 해냈다. 살아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학하면서도 살아남을 것이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나갈 것이다.


- 폴 댄스 끝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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