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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Apr 01. 2021

오래 사귀는 비결이 뭐야?

3가지 비결

5년 전쯤이었나,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야, 오래 사귀는 비결이 뭐야?"


그때의 나는 사귄 지 5년 정도 된 남자 친구가 있었다. 정말 평범하고 평탄한 삶을 달리던 일반인 1과 일반인 2였다. 반대로 나에게 오래 사귀는 비결을 물었던 내 친구는 인기녀 1이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훤칠한 키, 또렷한 이목구비로 무진 예쁜 데다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일 때조차도 인기가 많았었다. 내 친구의 옆 자리는 종종 바뀌 있었고, 그녀에게 다녀갔던 남자 친구들도 모두 키가 훤칠하고 잘생겼었다.


"음... 글쎄..."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딛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에스컬레이터가 내려가며 나의 생각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5년 동안 그와 쌓였던 지난날들을 한방에 함축할 수 있는 쌈박한 표현으로 뭐가 좋을까. 그동안 남자 친구에게 느꼈던 내 생각과 감정과 고민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세 가지 정도인 거 같아."

"뭔데?"


"음... 첫째는 포기, 둘째는 의리, 셋째는 의지."

"뭐라고?ㅋㅋ 그게 비결이야?"


"응 진짜야, 진심!"


* * *


나는 그를 [포기]했다. 존중과 포기는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둘을 결정짓는 것은 사랑의 깊이. 하지만 그때의 어린 나는 존중하는 법을 몰랐고, 어쩌면 그게 내가 그를 존중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에 비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내성적이고 내향적이었다. 반면 나는 감성적이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이었다. 돌이켜보니 맞는 구석이라곤 하나 없었나 싶다. 감성적이었던 나는 그가 사랑 표현을 자주 해주기를 바랐었고, 매일같이 그는 무뚝뚝했으며, 매일같이 나는 서운해했다. 물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습을 통해 사랑 표현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만, 감성 끝판왕이었던 나는 늘 사랑을 갈구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 표현을 받지 못할 것이라 [포기]했다.


나는 그를 [의리]했다. 그와 만나온 시간이 그를 만나게 했다. 1년이 지나 3년이 되고, 군대를 기다렸더니 대학교도 졸업하고. 오래 만났으니까, 오래 사귀었으니까. 내가 그를 만나는 이유는 그저 그가 내 남자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은 더 나아가지 않았다. 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흔히들 중년 부부는 [의리]로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헤어질 생각도, 자신도 없었던 그때의 나였다.


나는 그에게 [의지]가 있었다. 어떻게 서든지 그와 사랑을 하겠다는 의지 말이다. 서로 싸워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서로 안 맞아도 해소할 방법을 고심했었다. 그에게 원했던 감성적인 공감은 친구에게 빌렸다. 남자 친구와는 겨우겨우 10분, 내 친구와는 쉴 틈 없이 1시간 반이나 전화로 떠들었으니. 그에게 원했던 사랑 표현은 공대생 맞춤형으로, 이모티콘의 사용법과 종류를 입력하고 적재적소에 출력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알려주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고 딱 맞는 사람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유로 그와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물론,  비결이라고 해서 정답이 될 순 없었다.


* * *


"ㅋㅋ맞아, 그때 네가 했던 말 기억나."

"무슨 말인지 와 닿니?"


"웅ㅋㅋ 인제 무슨 뜻이었는지 알 거 같네."

"좋지 뭐, 아무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럽다야"


오래 사귀는 비결이 중요한 걸까?

서로서로, 오래오래,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거 다들 알면서.

오래 사랑하는 비결은... 알게 되는 대로 글을 써봐야겠다. 언젠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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