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뜯어보기<8>
* 세상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역사 매거진
대한민국에 힐링 열풍이 불어닥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행도 힐링, 책도 힐링, 문화도 힐링, 관계도 힐링, 음식도 힐링, 이처럼 '힐링'이라는 단어가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좋음'이라는 말을 대체할 만큼이나 굉장히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여행 다녀와서 힐링되었어' 라는 말을 '여행 다녀와서 좋았어' 라는 말로 대체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힐링'이라는 말이 이렇게 흔하게 사용되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왜 이렇게 힐링에 열광하고 있을까요?
힐링 = 치유, 안정, 개선, 용기, 위안, 지혜
너무 나가면 혹세무민
가만히 따져보면, '힐링'이라는 말에는 '치유'와 '안정', 그리고 '개선'이라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담겨 있습니다. 아픈 곳이 낫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하는 것과 같이 '더 나은 상태'를 지향하거나 그러한 상태가 되었을 때, 이를 두고 '힐링'이라 표현하죠. 나아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상태에 이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보니, 더 나은 상태를 실현하기 위해 '인생의 지혜를 구하는 일' 또한 힐링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문학가, 인문학자, 예술가, 종교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힐링 열풍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것이 미디어 산업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등장하게 되었죠. 이러한 힐링 열풍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안, 그리고 지혜를 주는 긍정적인 기능도 하고 있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 그대로 혹세무민의 시대인지도 모르죠. 좋은 말을 듣고 좋은 행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 힐링이 되려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보다는 '왜 나쁘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도 필요합니다.
그저 통제할 수 없는 개인의 감정 문제나 해결할 수 없는 집안 문제로 힐링 열풍을 이해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부족합니다. 물론 이러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으나, 현재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힐링 열풍은 막연한 현실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막연함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공포, 그것이 힐링 열풍을 불어닥치게 했을지 모릅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는데 살림살이는 더 나아지지 낳고 행복하지는 않는 현실에서 그나마 힐링, 그렇게라도 힐링, 그렇지 않으면 버텨내기 어려운 것이죠.
healing을 killing하고 thinking 해야 할 시간
2011년 월가에서 벌어진 시위는 금융가들이 망쳐놓은 경제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분노는 단순히 감정 폭발이 아니라, 이 사회를 망쳐놓은 원인에 대한 책임 추궁의 성격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저 힐링이라는 감정 놀음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힘들게 이어나가는 하루, 하루이지만 왜 이래야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때죠. 당장 바뀔 수 없다 해도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뒤따른다면 더 망가지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친 이른바 ‘힐링 열풍’ 역시 갑자기 발생한 현상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서양의 산업과 문화가 급격하게 몰려오면서 서양에서 겪었던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었죠. 급격한 서구화에 따른 문제이기에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더욱 답답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사회에 기반한 두터운 인간관계의 회복과 이에 기초한 공동체 문화의 복원이 대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두레와 품앗이 같은 전통문화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도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일이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이 오래된 철학적 물음에 여전히 답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 [세계사, 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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