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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Feb 25. 2019

(작가의 재구성) 니키 드 생팔

고통-사랑-나눔으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

예술플랫폼 <아트렉처> 연재 중인 글이다.

니키 드 생팔

예술가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예술로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물론 예술이 무어냐 묻는다면 딱 꼬집어 이것이 예술이에요 하고 말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예술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니키 드 생팔(이하 ‘니키’로 표현한다)이란 작가 역시 그런 예술과 예술 아닌 경계를 넘나들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예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하지만 결국엔 누구나 인정하는 예술가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그렇다.

니키 드 생팔 공식 사이트


니키가 주목받는 예술가로 만든 작품은 ‘사격 회화’이다. 말 그대로 총과 총알이 만드는 예술이다. 관객에게 총으로 물감이 든 봉지를 쏘게 하여, 그것이 터지며 퍼지거나 흐르는 효과를 석고 화면에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화가가 아닌 관객이, 붓이 아닌 총으로, 의도를 갖기 보다는 의도를 갖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20세기의 많은 미술이 그렇듯 니키의 추상화는 매우 획기적인 방식으로 탄생하였다.


무엇보다 이 슈팅 회화가 가진 매력은 자기 안에 가득한 분노, 자기를 가두는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정신적 해소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굳이 정신분석학을 들먹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수한 분노와 무거운 억압으로 자신의 몸을 가누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사격 회화는 쾌감을 선사한다. 버리고 싶은 자아, 거리를 두고 싶은 자아, 모른 척 하고 싶은 자아를 향한 가상의 살인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타인의 죽음과 흐르는 피 대신 예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2018년 니키 드 생팔 한국 전시회에서


이는 예술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카타르시스이자 예술적 승화로 볼 수 있다. 관객들이 예술에 참여한다는 즐거움과 함께 자신에 내재된 억눌린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의 미술적 표현을 고안한 것은 니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어린 시절 양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그녀에게 씼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그리고 어린 나이(20세)에 했던 첫 번째 결혼 또한 부담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니키의 어린시절의 불안하고 불행했던 경험은 그녀의 작품으로 고스란히 재탄생한다.


우울증을 겪던 니키는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했는데, 여기에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미술치료를 시작했다. 미술치료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극복하고 미술을 시작한 니키는 이후 이혼을 하고 자신의 예술적 동반자인 장 팅켈리와 사랑에 빠진다. 장 팅켈리는 1960년대 유행했던 ‘누보 레알리즘’이라는 예술 운동을 이끌던 예술가 중 하나였다. 니키는 장 팅켈리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마르셸 뒤샹이나 살바르도 달리와 같은 여러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함께 예술을 논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 나간다.


*누보 레알리슴(Nouveau Réalisme) : 1960년대 초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운동으로 ‘신사실주의’로 번역된다. 당시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지배한 추상미술의 현실도피성에 회의를 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수용하려는 미술경향을 말한다. 누보 레알리슴은 공업제품의 단편이나 일상적인 오브제를 거의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현실의 직접적인 제시’라는 새롭고 적극적인 방법을 추구했던 미술이다. ‘기계화되고 공업화되면 광고로 넘치는 우리들 현대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차용’하여 제시하는 것은 누보 레알리슴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자 방법이다.


니키의 예술적 성취는 사격 회와와 함께 그녀를 대표하는 작품인 ‘나니’ 시리즈로 이어진다. 통통한 몸매와 짓궂은 몸짓으로 이루어진 이 조각은 화려한 색상과 뚜렷한 대비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작품이다. 치료의 목적으로 시작한 미술이었기에 생기 넘치는 작품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만화적 상상력 위에 기존의 사회적 가치관들을 뒤집는 묘한 쾌감을 선사하면서도, 니키가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담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2018년 니키 드 생팔 한국 전시회에서


니키의 작품에서 또 하나 주목해 볼 만한 요소는 뱀과 나무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머리카락이 뱀인 메두사라든지 이브를 유혹하는 뱀과 같이 유럽 문명에서 ‘뱀’은 매우 부정적 의미를 담은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니 키드 생팔의 작품에서 이러한 뱀의 등장은 자신을 향한 혐오, 부정의 감정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조성된 그녀의 작품을 모아놓은 ‘타로 공원’에 등장하는 여러 조형물에서는 이러한 뱀이 친근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있어 그녀가 과거의 자기를 극복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 인간으로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니키 드 생팔 한국 전시회에서


그리고 그 극복은 ‘나무’의 표현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한 인간의 정체성 또는 성장을 상징하는 인간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이다. 커다란 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내적으로 성숙한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 풍성한 나뭇가지는 삶의 풍요로움을 비유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녀가 자주 썼던 그림일기에는 장 팅켈리와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에서 나무가 등장한다. 나무 아래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니키에게 사랑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안식인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2018년 니키 드 생팔 한국 전시회에서


최근에 힐링이 유행하는 것은 자기만의 아픔과 슬픔을 해소하는 방식을 몰라 헤매는 이들이 가진 마음의 방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니 키드 생팔의 작품은 이렇게 부유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느끼는 관객들에게 삶의 의미들을 던져주고 살아갈 힘을 갖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 한 가지정도는 갖고 살아간다. 니 키드 생팔 역시 그러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달랐던 점은 이를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니키 드 생팔 전시회(2018)

니키 드 생팔에겐 남편인 장 팅켈리 이외에 그녀의 지지자이자 친구였던 요코 마즈다 시즈에가 있었다. 1980년대부터 니키와 교류를 해왔던 요코는 니키란 한 인간과 그녀의 작품에 매료돼 일본 도치기 현에 세계 최초로 니키 미술관을 열기에 이르렀다. 이 미술관에서 뽑은 ‘마즈다 컬렉션’이라 부르는 127점의 작품이 2018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리뷰 영상은 ‘고통-사랑-나눔’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하였다.


•니키 드 생팔 전시회 리뷰 - 1부 고통

https://tv.kakao.com/v/406573132


•니키 드 생팔 전시회 리뷰 - 2부 사랑

https://tv.kakao.com/v/406908970


•니키 드 생팔 전시회 리뷰 - 3부 나눔

https://tv.kakao.com/v/406909008


*예술, 이상을 향한 인간의 진격
by 김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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