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고 오래 살기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100세를 산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고 100세를 넘은 사람들은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었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을 보더라도 평균 수명이 80세에 육박하고 '환갑 잔치'는 옛날 이야기이고 ‘노인네들의 잔치’가 된지 오래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여든 살을 넘어 아흔 살을 바라보고, 백 세를 돌파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장수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진시황이 늙지 않고자 불로초를 찾으려 했던 것도 오랜 장수의 꿈이다. 늙지 않아야 죽지 않기에. 물론 사고로 죽는 일도 있으니 늙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 것은 아니나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큰 복이긴 하다. 동양에서 인간의 오복(五福)으로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을 꼽는다. 이번엔 그 중 하나인 '수', 즉 장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오래 살면 좋을까? 무엇이 좋을까?
인간의 수명이 연장된 데에는 의학의 발전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 최근에는 노화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과학적 실험이 진행 중에 있다. 여기에 주거 환경과 식생활의 개선으로 질병에 걸리는 확률이 줄어든 것도 인간 수명 연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선진국과 신흥국 등 더 발전된 국가들로 한정되는 경우이긴 하지만 인간의 삶의 조건들이 과거보다 훨씬 나아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것이 정말 축복이고 행복일지는 확신할 수 있을까? 평균 수명 100세에 이른다고 해서 인류의 생활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질적 조건이 나아졌다고 해서 정신적 조건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라 통칭하는 인간을 압박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부작용들이 발생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고통이 인간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딜레마를 상정해 보자. 스트레스를 안고 장수하는 것이 스트레스 없이 단명을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을까? 금방 죽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여전히 오래 사는 것을 선택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오래 살 수 있으니까. 살다 보면 삶의 조건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수명이 늘어난 만큼 생존의 문제도 더 중요해졌다. 개인으로서는 죽는 날까지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복지 제도가 잘 갖추어진 국가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국가의 입장에서는 복지 예산의 증가도 문제이지만 출산율의 저하로 복지에 대한 지원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으로 죽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생존의 문제만큼 즐길 거리도 있어야 한다. 놀이가 있고 문화가 있어야 인간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취미 생활과 같은 것들을 통해 활력을 얻어야 더 건강히 살 수 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상태라면 흔히 말하는 소일거리라도 해야 하루 하루를 버티고, 버티는 걸 너머 의미 있게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루함을 견디는 것은 무덤 속에서 영면을 견디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닌
잘 사는 게 문제
장수하는 만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뒷받침해줄 문화가 성숙되어야 한다. 살아서 뭐하나 싶은 이유에 답하는 것이 바로 존재 이유이다. 젊을 때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도 모든 것이 충족될 수 있다. 젊은 날이기에 방황의 시간도 있지만 그만큼 기회의 시간도 주어지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늙어가면서 사람들은 열정을 잃고 삶의 의지와 기쁨도 동시에 줄어들기도 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삶은 생각보다 고만고만하다. 아주 잠깐 ‘미친듯?’ 즐거운 20대를 거치면 대부분의 삶은 죽음을 향해 ‘미친듯?’ 나아간다. 많은 걸 이루고 싶고 더 많은 걸 갖고 싶으나 한계가 있고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누구의 인생이든 쉽지 않다는 사실도 더욱 깊이 절감한다. 그래서 서로 공감하기도 하지만. 때론 이렇게 힘들게 살 거라면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다. 문제는 삶의 질이다. 평균 수명 100세, 오래 산다고 사는 게 더 나아지지 않는다.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이다. 왜 더 오래 살려 하는지, 오래 살아서 무얼 하려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며, 또 뭘하고 살지 고민해야 하고, 그것이 의미 있는지를 또 물어야 한다. 장수의 꿈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사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왜 오래 살려 하는지. 오래도록 잘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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