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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27. 2022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기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기


1930년대였다. 세계 경제대공황이 불어닥쳤다. 물가는 폭등하고 경기는 폭락했다. 실업자가 넘쳐났다. 미국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뉴딜 정책을 단행했다. 정부가 산업에 깊숙이 관여하여 기업과 은행에 보조금을 주고 댐 건설과 같은 토목공사에 직접 뛰어들어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케인스의 주장을 받아들인 루즈벨트 대통령이 단행한 정책으로 이후 경기 부양의 모범적 사례로 손꼽혀 왔다. 누군가 소비를 하고 누군가 생산을 하며 자본이 돌고 돌아야 자본주의가 존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건이기도 했다.


현대 중국으로 가 보자. 현대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뚱이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이 토지 개혁이었다. 지주들이 갖고 있던 토지를 모두 몰수하여 중국 농민 모두에게 골고루 분해해 주었다. 마오쩌뚱은 사회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농민들이 등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사회를 건설하려 하였다. 당연 농민들은 매우 기뻐했고 마오쩌뚱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했다. 실제 토지 개혁 이후 쌀 생산량이 45% 정도 늘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성과임엔 틀림없다.


이와 같은 사례들로 볼 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인간 삶을 지탱하는 정신적 가치이지만 그보다 먼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는 것이다. 먹는 거 자는 거 입는 거에 걱정이 없다면 인생의 문제들의 대부분은 해결될지도 모른다. 정치에서도 '민생'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양에서 인간의 오복(五福)으로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을 꼽는데, 이와 관련하여 그 중 하나인 '부', 즉 부유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등따시고 배부르기
모든 인간의 욕망


생활고에 찌들어 자살했다는 뉴스를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는 요즘이다. 선진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이지만 모든 사람이 등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부 격차는 더욱 커졌고 그에 따른 불평등도 커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예에서 보았듯 잘 산다는 건 마음가짐으로 되는 일만은 아니다. 물론 맹자는 군자는 가난하더라도 마음은 꿋꿋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군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재화는 부족한데 욕구는 무한하여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의 문제가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모든 사람에게 재화가 고루 분배되는 시스템이라면 걱정할 것 없겠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누군가 더 많이 가지기도 하고 덜 가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계적으로 n 등분을 하는 것도 부의 균등한 분배라 볼 수 없다. 어떤 경우엔 소수의 사람이 독식하기도 한다. 공정과 상식의 문제가 자꾸 거론되는 것도 올바른 분배의 문제에 있다.


고대로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분배의 문제와 정의에 고민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불만과 갈등이 커지고 사회는 분열되어 혼란해지기 때문이다. 분배가 정의롭다면 조금 배고프더라도 참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 배가 불러도 참을 수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이기도 하다. 같이 죽으면 죽었지 아주 작은 이익이라도 빼앗기기 싫은 것이 인간의 간사함 중 하나이다.


일한 만큼 보상 받고 필요한 만큼 요구하고 얻은 만큼 쓴다면야 세상에 다툴 일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이것은 지나친 이상주의이기도 하다. 20세기 사회주의자들이 이를 실현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사람은 노력에 따라 좀더 갖기를 원하니까.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도 더 얻기를 원한다. 한편으로는 남의 것을 권력으로라도 빼앗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다.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도 좀더 많이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에는 항상 ‘불평등’이라는 수식어가 따르기 마련이다. 사회주의가 등장하고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불평등을 수정하고 보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재화의 '분배'는 사실 '소비'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잘 쓸 수 있도록 하고, 잘 써서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일, 그것이 공정한 분배이다.


물질적 가난과 심리적 가난
왜 가난해야 하는가?


모든 사람이 가난할 때는 다들 가난해서 괜찮았다. 모든 사람이 부유할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풍족할 수 있어야 좋은 사회인데, 오늘날엔 과거보다 양적으로 부유해졌지만 심적으로 더욱 가난하게만 느껴진다. 모두가 힘든 시대이다. 누구나 부유하고 싶고 누구든 가난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똑같이 나눌 수는 없는 일이고, 서로를 죽여서라도 자기 이익을 취하는 것도 결국 자신마저 나락으로 빠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 만석군은 자기가 살아가는 동네에서 굶주린 사람을 없게 하였다고 한다. 일종의 개인적 기부 행위이기도 했고, 사회 차원의 복지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굶지 않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더해 그들이 굶지 않아야 다시 농사에 매진할 것이며, 그렇게 삶이 풍족해져야 그 지역 일대가 평온하고 안정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의 정의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왜 이런 시대가 되었는지를. 그리고 가난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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