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실제로 좋아합니다
아이가 입원했다. 병명은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급성 장염. 세상의 모든 모래는 다 만지고 다니느라 늘 손톱밑이 까만 내 아가의 작은 손에 주사기가 꽂히고 탈수로 인해 혈색은 파리하고 눈 밑은 어른 다크서클마냥 컴컴한데 또 수액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부었다. 설사가 멈추지 않아 바지는 입히지도 못하고 기저귀 바람을 한 채, 아이는 지겨워 하며 내 배에 얼굴을 파묻고 뒹굴고 있었다. 어른도 그렇듯, 아기는 아프면 더 아기가 된다. ‘엄마 나는 레이싱카가 좋아’ ‘아빠 할말이 있어요. 회사 가!’ 등 이제 원하는 건 말로 제법 표현할 줄 아는 28개월 녀석이 끼잉낑 강아지 소리를 내며 어리광을 부린다. 아이도 힘들지만, 지켜보고 간호하는 엄마도 이미 녹초가 되어 있던 입원 3일차 지루한 오후였다.
하루에 한번 쓰레기통을 비우고 간단한 병실 청소를 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이를 잠시 쳐다보시던 아주머니는 “아이구 아가, 좋겠네”라고 말을 건네셨다. 아이구 아가,에서 안타까움을 담은 멘트가 이어질 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한 나는, 너무 짧아서 내가 잘못들었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아주머니는 이미 할 일을 마치고 문을 나서신 후였다. 며칠을 구토와 설사만 하고 음식 한수저를 못삼켜 시커매진 아이를 보고 좋겠다니. 황당한 기분 끝에 얕은 짜증이 일었다. 안그래도 힘든데, 하고 중얼거리며 무심코 내 무릎을 벤 아이 얼굴을 쳐다 보았을때, 아- 나의 아이는 실로 좋아보였다. 눈에 특유의 반달 웃음을 휘어지게 담고 누렇게 뜬 얼굴을 내 다리에 비비며 어쩐지 흐뭇해 하고 있었다. 아무 용건도 없으면서 내어보는 ‘음마, 음마’ 하는 아기소리에는 불편이나 짜증이 아니라 응석과 어리광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38도를 웃도는 열과 바이러스와 싸우며 답답한 병실 생활을 보내는 와중에도 유래없는 엄마 아빠와의 초 밀착 시간을 꽤나 즐기고 있었나 보다. 회사 다닌다고, 집안일 한다고, 하루도 미룰 수 없는 내게 주어진 과업들을 처리하며 동시에 아이를 돌보는 일상.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며 무엇으로도 끊김없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팔다리를 쓰다듬고 부둥켜 안고 있는 시간이 하루에 몇분이나 될까. 유명한 국민 육아 앱에서 ‘하루에 10분은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놀아주세요’ 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읽은 적 있는데 그때 속으로 ‘아니 하루종일 애랑 붙어서 놀아주는데 10분 집중하라니 좀 이상하거 아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잠시 되짚어 보면 가볍게 생각한 그 10분이 의식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요리를 하며 발치에서 놀라며 장난감을 쥐어준다던지, 놀아달라는 아이옆에 철퍼덕 누워 엄마는 환자야 의사선생님 치료해줘요 하고 넋을 놓는다던지, 미끄럼틀 옆에서 성의없는 추임새만 넣는다던지. 변명거리가 무엇이든 나의 그 시간들을 차마 그 10분에 포함시킬수가 없다.
아픈 아이는 며칠을 온전히 작은 병실에 갇혀서는 꼭 껴안고 부비고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봐주고 – 손에 꽂힌 링거 줄 때문에 눈을 뗄 수가 없다 – 안타까워 계속 쓰다듬고 짜증도 받아주고 한몸같은 핸드폰도 잠시 안 보고 집중해 주는 엄마와의 시간을, 이 순간을 만족을 듬뿍 담아 즐기고 있던 것이다. 아이의 숨김없이 드러나는 흐뭇한 표정이 제 3자인 아주머니의 눈에 보였으리라.
나의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겐 절대적인 행복과 안정의 동아줄이기도 하다. 내 작은 품이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안전한 녹색지대이다. 내 눈 맞춤이 누군가에겐 기쁨이자 최고이기도 하다. 내 미소가 누군가에겐 최고의 보상이다. 잘 부르지도 못하는 내 노랫가락이 누군가에겐 들어도 들어도 듣고싶은 인생 명곡이다. 그 ‘누군가’에겐 나의 진심이 반드시 통한다. 온전하게 유일한 그 ‘누군가’를 소유했다는 사실이 충만하게 다가온다. 역시나, 내 아기는 내가 주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주고 있다.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상태에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