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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날 Sep 09. 2021

워킹맘에게 나라가 허용한 정당한 평일 휴가

백신 공가

회사생활 하다보면 어떨땐 엉덩이 붙이고 모니터 보고 있는 게 고역일 정도로 일이 없어 지겹고, 어떨 땐 이게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건가 싶게 일이 폭우같이 밀려온다. 균형 있게 그게 좀 나눠지면 좋겠지만 일이라는 게 그렇다.


근 이 주간 일에 떠밀려 가라앉지 않으려고 혼신의 발버둥을 치며 헤엄쳐 왔다. 일은 죽어라 쳐내도 계속 얼굴에 달라붙는 말미잘 같았는데 잠시 숨이라도 고르고 싶어 쳐내기를 조금 살살한다 싶으면 바로 따라붙는 후폭풍은 상당해서 숨통을 조이고 꿈자리까지 압박하고 많이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저 달릴 수밖에 없는 거다.


일에서 누더기가 된다 해도 집에 돌아가 넋을 빼고 지친 사지를 놓아줄 수만 있다면. 이게 사치가 될 줄 몰랐건만 워킹맘에겐 그렇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일을 그렇게 해 내고 만다. 하루쯤 안 하면 되지 않느냐지만 하루쯤 아이 밥을 안 주고 하루쯤 아이를 안 재우고 하루쯤 온몸이 땀범벅인 아이를 씻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게 다시 오늘과도 같은 내일이 온다. 아는 워킹맘 언니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드디어 잘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이 정도면 회사 일이 멈추든 말든 사단이 나든 말든 잠깐 하루 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잘 안된다. 남 돈 받고 일하고 앞으로도 일할 사람의 책임감이란 딱히 사명과 애사심이 없다 해도 생각보다 강력해서 빠듯하게 진행 중인 업무 흐름을 팽개치고 연차 휴가를 올리기란 여러 모도 쉽지 않다. 어릴 땐 ‘ 아니 저렇게 몸이 아파 보이는데도 왜 기어코 출근하는 걸까? 회사 안 오면 세상 단절 나나?’ 했는데 직장생활 14년 차인 지금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게 개인을 위해 옳지 않으며 회사는 결코 개인의 안위엔 관심 없고 날 챙길 수 있는 건 나만이라는 것도 다 알건만- 상당한 용기와 결단 없인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내게 나라가 허용한 정당하고도 반강제적인 휴식이 주어졌다. 백신 휴가. 회사 정책으로 백신을 맞는 사람에게 하루의 공가가 의무적으로 주어졌다. 백신이 아니었으면 나는 조금씩 무너지며 소멸되가던 모래산의 흐름을 자의로는 쉽게 끊어주지 못했으리라.


휴가는 목요일, 백신은 오후 3시 예약이었다. 아이와 9시까지 잤다. 내 출근에 맞춰 늘 일찍 일어나야 했던 내 세 살 아기도 푹 자서 얼굴이 말갛다. 늘 엉덩이 불나듯 재촉만 하다 진이 빠지는 아침 출근, 등원 길이었는데 느릿느릿 아침도 먹이고 만화도 보여주며 늦장 준비를 해 등원을 완료했다. 오랜만의 휴식 이건만 무엇을 할지 생각을 못해놨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핸들을 돌렸지만 곧 생활감이 충만한 안온하고 지루한 일터 같은 동굴로 들어가기는 싫었다. 목적지를 못 잡고 뒤뚱뒤뚱하는 차가 데려다준 대로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의 야외로 이어진 뒤뜰에 커피를 한잔 시켜 자리를 잡고 앉아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건물 사이로 하늘과 나무가 너무도 청량해서 순간 아득해졌다.   번의 휴식을 얻기가 그토록 힘들었던가. 먹고 살아가고 삶을 살아간다는  무언가. 너무 좋아서 씁쓰름했다. 그래도, , 너무, 좋았다. 음식 사진  안찍는 내가 커피잔 놓인 풍경도 찰칵찰칵 찍어보고 괜시리 하늘도 찍어 친구에게 공유도 해했다. 씁쓸하던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초가을 하늘처럼 말게져갔다.


돌이켜보면 뭐 하나 잘되자고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성실히 다니는 회사도, 고군분투하는 육아도, 그리고 오늘의 백신마저 건강하게 살아보자고 맞는 것이 아닌가. 잘해보자고, 잘 살아보자고, 그렇게 애써가며 하루하루 눈앞의 수풀을 헤치고 우당탕탕 가보는 것, 그게 사는 거겠지. 고단하지만 충분히 헤치고 갈 수 있어서, 가끔씩 이렇게 쉬며 신발끈을 묶고 갈 수 있어서 다시금 힘을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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