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파리에서의 두 달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이제 주어진 시간은 겨우 두 주 정도뿐이다. 모래 사장에 온 어린이의 기분이다. 모래를 아무리 세게 움켜쥐려고 해봐도,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사람의 욕심으로 모래조차 붙잡을 수 없는데 시간의 발목을 어떻게 붙들 수 있을까.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너무나 아쉽고, 남은 시간이 이렇게 적다는 것이 속이 상한다.
어떤 날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친구들과 약속이 없는 날에는 상념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다른 이에게 이유 없이 위협을 받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른 이에게 이유 없이 호의를 받기도 했다. 어떤 날은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귀했던 것은, 평생 생각해 본 적 없던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그동안 스스로 알지 못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 스스로를 내던져보니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한테 가서 자신 있게 말을 걸 수 있어?” 알리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겠어. 그게 나인가 봐.” 나는 대답했다.
파리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불안정했다. 어떤 이는 번 아웃으로,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별로, 어떤 이는 가정사 때문에 다들 조금씩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모두 파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각자의 불완전함을 나누며 함께 치유하는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가 “왜 파리를 선택했어?”라고 이탈리아인 이렌에게 물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 파리에서 석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파리에서 나는 조금 더 나일 수 있는 것 같아. “ 그녀의 대답에 놀랐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이 모여 살며 비슷한 것을 추구하는 삶 속에 있을 때는, 나도 남들과 같은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서열화된 삶 속에서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낙오될 것 같은 초조함이 내 안에 늘 있었다. 하지만 홀로 고향과 분리된 곳에 있다 보니,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값비싼 여정을 통해서 비로소 내가 되는 법을 공부하고 있다. 나답게 살 수 있는 경험을 준 것. 이 것이 파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