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별 Oct 22. 2023

작은 가게, 오늘은 이만 마감합니다.

작은 가게에서 기다립니다.

 나를 기다리는 작은 가게.


 특별히 작은 가게의 꾸밈말을 고민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신나게 3년 6개월을 채우다 보니 '~해서 감사하다' 해주시는 고객님들 말씀에서 작은 가게의 할 일이 규정됩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많이 더 자주 오시길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지금 꼭 작은 가게 음료가 필요한 그 순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괴로운 날, 친한 친구가 내 흉본 것을 전해 들어 상처받은 날. 아이와 다투고 걸을 힘이 없는 날, 친구의 소식이 나의 일상과 비교되어 속상한 날, 그냥 이유 없이 위로가 필요한 날. 작은 의자에서 마음 달래시길 바라며 기다립니다.

 바라만 보던 친구가 영화 보자 하여 기쁜 날, 준비하던 시험을 마치고 후련함에 가벼운 날, 체중계가 바라던 숫자까지 내려가 환호하는 날, 처음으로 내 이름의 집을 사고 즐거운 날, 누군가에게 진심 담긴 사과를 받아 눈물 나는 날. 작은 음료에 행복이 부풀길 바라며 기다립니다.

치약을 단단히 준비해야 해요. 빼빼로데이의 산타들.

 초심보다 강렬해진 열심 말고도 초심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더 많이'에 욕심을 냈다면, 지금은 더 알리고 더 팔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그저 오늘 주신 감사한 분들께 더 잘하고 싶습니다. 사업가에 맞지 않는 그릇이라 하시겠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가게의 이야기를 쓰는 그릇이고 싶습니다.

 

 작은 가게에는 말 없는 소통도 있습니다.

 두 분께서 조용히 대화하시면 작은 가게는 주방 청소 시간입니다. 할 일이 없어도 바삐 움직입니다. 저는 없는 사람이 되어야 고객님들의 비밀 대화가 편해집니다. 서너 분 이상의 고객님들께서 크게 대화하실 때 최신 댄스곡을 크게 틉니다. 소리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푸실 수 있도록. 안 그래도 좁아 미안한 가게에서 눈치까지 보시라기엔 너무 죄송하니까요. 노래에 가려진 저는 조용히 책을 펼 수 있으니 좋습니다. '으하하하하' 크게 웃으시며 음료 만드시는 제 쪽을 보시면 저는 고객님들 쪽을 바라보지는 않되 눈으로 웃습니다.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전해져 저도 소심하게나마 미소로 답합니다. 온라인을 통해 독특한 분께서 가게를 찾으셨을 때, 수상해 보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하셨던 고객님의 2시간 지켜보기 언어는 여전히 남아 작은 가게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습니다.

 

 말과 또 다른 언어로 남겨진 이야기들이 저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출근합니다. 닫힌 문에 돌아설 이야기가 걱정돼 다른 일 미루고 자꾸 가게로 달리게 됩니다. 경험 삼아 2년 정도만 열심히 해볼까 했던 초심은 이제 없습니다. 더 열심히 더 꾸준히 더 길게 기다릴 것입니다. 작은 가게 스몰토크 시즌2, 시즌3 그리고 시즌 10을 향해.


작은 가게에서 기다립니다. 당신의 작은 이야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