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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Oct 21. 2024

수줍음

 "우리 환희가 왜 꼭 와보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처음 뵙는 고객님이셨다. 아드님과 천천히 메뉴에 대해 대화하시며 음료를 하나씩 고르셨는데, 가실 때 기습 공격을 던지셨다. 

 힝. '이보다 칭찬이 있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는데, 시험기간을 앞둔 애교쟁이 중학생 고객님 그리고 키에 다정한 미소를 지니신 엄마 고객님 이어 입장하셔 휘청이던 마음을 바로잡았다. 그때, 할라피뇨 불닭 볶음면처럼 강한 공격이 훅, 훅훅 들어왔다.


 "저희 선생님이 사장님 너무 좋아하셔서 칠판 판서에 사장님을 쓰셨어요."

 "우리 하연이가 이래서 좋아하는구나. 아빠랑 금요일마다 꼭 가야 한다고."

 히잉 맙소사. 이응이응 야망은 흐릿해지고 공격 전술을 펼칠 틈 없이 무너진다. 부끄러워 말문이 막히는 바람에 환희가 꼭 가보라고 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칠판에는 내가 어떤 내용으로 등장했는지 하연이가 어떤 말을 하며 가겠다고 했는지 묻지 못했다.

 모두 퇴장하시고 혼자가 되면 고객님들의 대화 속 나를, 고객님이 바라본 칠판 위 나를 상상한다. 그러다 키링에 달린 큰 눈의 초록 인형과 눈이 마주치면 다시 양볼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히잉 들켰네!

 

 지쳐 보이던 세상을 픽업대 사이에 두고 가까이 마주하니 귀엽고 또 귀엽고 한없이 귀엽다. '어리고 작을수록 귀엽다.'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머뭇거림 없이 좋은 마음을 전하는 맑은 존재는 모두 귀엽다. 이렇게나 귀여운 분들이 많다니, 귀여움 공격수로서 분발해야 한다.


 선물 받은 문장들을 떠올리며 나도 곳곳에서 더 자주 마음을 남긴다. 붕어빵 포장마차 사장님께 이 붕어빵으로 이웃들과 함께 행복했음을 전한다. 문구점 직원분께 지난번 추천해 주신 펜이 정말 잘 써진다고 인사를 한다. 에어컨 수리를 받으며 감사했던 기사님께 메모를 남기려 어플에 접속한다. 방문한 서비스 센터에서 고객의 소리 카드를 발견하면, 짧게라도 미소를 끄적인다.


 고객님 '힝'에 웃음이 터지는 날도 많다.


 "엄마 나 제일 큰 사이즈 초코 버블티에 초코 소스 넣고 휘핑도 추가하면 안 돼?"

 "응 안돼~"

 "히이잉"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혹시 그사이 엄마가 규칙을 잊었을까 매번 다시 물어보는 아가의 '힝'은 어머님과 내가 마주 보며 웃게 만든다. 그리고 또 혼자 생각한다. 조금 더 자라면 용돈으로 엄마 허락 없이도 먹고 싶은 걸 먹겠지. 그러다 어른이 되고 언젠가 엄마의 '안돼'가 그리운 날도 찾아올 거야. '힝'을 훌쩍이던 때가 그리운 지금의 나처럼.

 불 꺼진 가게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괜히 마음속 엄마를 불러본다. 엄마, 나 몸이 점점 더 동그랗게 번지고 있지만 오늘밤 소스 안 찍고 제일 작은 치킨 딱 한 조각만 먹으면 안 돼?

 (어쩐지 우리 엄마는 오늘 고생했으니 양념 소스 듬뿍 찍어 맛있게 먹으라고 할 것 같다. 힝.)

 

 "엄마 약국부터 가면 안돼?"

 "아냐 병원에 가야 약국에 갈 수 있어."

 "힝. 나는 약국이 좋은데!"

 "약국에서 약을 받으려면 처방전이란 게 필요해. 지호한테 무슨무슨 약을 주세요. 하는 병원 선생님 종이가 있어야 약국에서 약을 주시는 거야."

 "히잉. 그래도 나는 약국이 좋아. 약국 가려면 병원부터 가는 거야?"

 유치원에서 만든 종이 바람개비를 자랑하며 들어왔던 약국 바라기 아가의 귀여움에 또 기절하며, 목표를 한 줄 더해본다.


 버블티가 먹고 싶어 등원하는 학생, 버블티가 그리워 출근하는 직장인, 버블티가 좋아서 외출하는 동네 주민. 엄마가 학원에 그만 다니라 해도 '힝 버블티 먹어야 해서 학원에 가야 한단 말이야!'하고 투정하게 만드는 가게.


 할 수 있을까?



힝. 부끄럽습니다. 천사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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