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그리며
지난달, 뇌경색으로 투병 중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밭일을 나갈 정도로 건강한 분이셨는데 3개월 전부터 무기력과 기억력 감퇴 증상이 나타났다. 할아버지의 몸은 자꾸만 누워있기를 바랐고, 정신은 최근의 기억부터 지워나갔다.
지역 병원에서 한 차례 오진을 겪고, 대학 병원에서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치매가 아니라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에 가족들은 한 줄기의 희망을 가졌지만 할아버지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함께 거주하던 할머니가 홀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할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문제는 코로나였다. 요양병원 내에서의 감염이 뉴스에 화두가 되고, 방역 절차가 까다로워진 탓에 가족들의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 영상통화 화면 속 할아버지는 눈을 붙인 채 주무시기만 했다.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셨다.
기억력 장애가 나타나면 매일 눈을 뜨는 게 고통이라는 말을 들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눈 앞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군가 날 여기 가둬놓은 것 같다.
할아버지에게 요양병원은 특히 더 그랬을 것이다. 가족에 관한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있는데 여기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난 지금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누워있다.
눈을 뜬 채로 고통과 혼란 속에 있느니 눈을 감아버리신 게 아닐까.
걱정이 된 이모가 간병인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의 상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병원으로부터 산소포화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할아버지는 오래 버티지 못하셨다. 코로나 탓에 요양병원에서 격리된 채 가족들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가셨다. 이제 할아버지를 보지 못한다는 슬픔과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죄송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는 비가 많이 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하늘도 같이 울어 주고 있었다.
돌아가신 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면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된다.
할아버지가 날 찾아온 건 지난 주말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졸음의 습격에 낮잠을 자려고 누웠다. 밤에는 누워도 안 오는 잠이 낮에는 눈꺼풀에 추를 걸며 찾아온다. 알람을 맞추고 1분 만에 잠들었다.
처음 보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포근한 느낌의 집이었다. 사촌동생들은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열심히 게임기를 붙들면서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옆에서 인기척이 났다.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아무 말이 없으셨지만 난 들을 수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고 웃으면서 잘 살아.'
'엄마가 행복할 수 있도록 제가 옆에서 노력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두 번의 마음이 오가고, 할아버지는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문을 열고 나가셨다.
깼을 땐 잠든 지 30분이 안 지난 시간이었다. 꿈에서는 괜찮았는데 되새겨보니 눈물이 났다.
어쩌면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배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오신 게 아닐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오르는 지금이지만, 아쉽지는 않다.
한 번이라도 보고, 한 마디라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신세대였던 할아버지는 생일이면 문자와 카톡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곤 하셨다.
다음 달 생일에는 할아버지가 유독 그리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