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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영씨 Jan 06. 2017

계란 그리고 허무함

육아그림일기

둘째 아이에게 일기를 쓰라고 하자, '집예서 아모것도 못했다. 아모것도 못해서 정말로 슬펐다'라고 썼다. 방학 중이라 할머니, 오빠와 종일 집에 있는데 오빠는 학원에 왔다 갔다 하지만, 자기는 같이 놀아 줄 오빠도 없고, 친구도 없고, 놀이터도 없으니 꽤나 심심한 모양이다. 입 삐죽거리며 와이맨의 호기심 딱지를 보는 녀석을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저거 만들어볼까?' 하니 눈이 두 배쯤 커지면서 '응응!!' 한다. 그래서 시작한 계란 탱탱볼 만들기. 유리병에 식초를 넣고 계란을 넣고 오픈 날짜를 라벨에 적어 붙였다. '엄마!! 빨리 탱탱볼 됐으면 좋겠어!!!' 하고 오빠에게도 자랑, 아빠에게도 자랑이다. 유리병을 껴안고 자는 아이에게 희미한 식초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드디어 5일째가 되는 1월 2일.

출근 전, 자고 아이에게 가만가만 속삭였다. '엄마 출근한다... 사랑해' '그리고 오늘 계란 탱탱볼 꺼내는 날이야' 하자마자 평소에 내처 자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유리병을 가지고 와서 빨리 꺼내달라고 한다. 유리병 입구에 꽉 찰 만큼 커진 계란을 흔들어 꺼내보니 안에 노른자가 보이면서 말랑말랑한 느낌이 정말 탱탱볼 같아 신기했다. 잠에서 깬 할머니도 부엌으로 나와 '아이구, 신기하네. 어디 한번 보자' 하니, '할머니는 손톱이 길어서 터져! 조심해!' 하며 주의를 준다. 손녀딸을 살짝 흘겨보며 손톱을 숨긴 할머니가 살살 만져본 후 안절부절한 아이 손에 살포시 들려주신다.


"잘 가지고 놀아~ 엄마 출근한다~" 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또) 바닥에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다. 아이에게 5일이라는 시간은 꽤 길었을 텐데, 그 기다림을 인내한 아이가 받아들여야 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 아이는 난감한 표정이다. 손안의 감촉이 채 마르기 전 사라진 탱탱볼을 가만히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 하고는 그대로 뒤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하는 말은 통할 리 없지만 경험으로 빠르게 배웠을 아직 어린 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에그, 서운해라. 오래 기다렸는데... 엄마가 다 속상하네. 엄마 퇴근하면, 또 만들어보자... '


# 계란 탱탱볼 만드는 방법 (와이맨의 호기심 딱지, 과학놀이)

1. 계란을 식초에 담근다.

2. 5일을 기다린다.

3. 물에 씻으면 계란 탱탱볼 완성. (허무하게 터질 수 있으니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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