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씨, 제9조에 오타 있어요!
꽤 오래전 일이었지만 아직까지 분명히 기억납니다. 제가 크게 소리쳤죠. 보고서에 너무 눈에 띄는 오타가 있으니깐 빨리 고쳐야 한다고요. 문제는 제가 소리쳤던 그 일이 한밤중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자던 와이프는 깨어나서 기가 찬 듯 저보고 물었습니다.
"자면서도 일해요? 웬 잠꼬대예요?"
"아니, 잠꼬대가 아니에요, 진짜 오타가 있었어요. 빨리 고쳐야 하는데..."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컴컴한 안방 침대 위더라고요. 그제야 저도 이게 꿈이었고, 제가 자면서 일하는 꿈을 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방금 전까진 현실처럼 생생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곤 배가 싸르르 아파왔습니다. 아, 배야...
비서관 자리에 온 이후로 종종 자다가 배가 아파서 깹니다. 심할 땐 새벽에 응급실에 갔던 적도 있었고요. 비서관 일이 잘 안 맞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가 했었는데, 얼마 전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자면서도 일을 하는 게 건강에 꽤 나쁜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진정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니깐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집에 와서 와인 한잔 마시면서 노트북으로 업무를 하는 걸 보면 멋있기도 하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집에서도 내내 일 생각만 하면 자다가 속이 뒤집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집에선 회사와 관련된 건 쳐다보지도 말아야겠더라고요.
문제는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왔더니, 오자마자 바로 씻고 자려고 누우면 방금 전까지 하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의식적으로 생각을 안 해야지 하면 더 그 일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됩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억지로라도 취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머리를 비울 수 있겠더라고요. 어떻게든 자투리 시간이라도 내서 책도 읽고, 컴퓨터 게임도 합니다. 브런치에 올리려고 글도 쓰고 있고요.
아무리 일에 대한 열정이 크다해도 제 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 않겠습니까. 어떤 책에서는 성공하려면 꿈에서 생각날 정도의 몰입을 하라고 한다지만, 전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건강도 챙기면서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러면서 업무 시간엔 집중해서 열심히 일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