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면 물어보세요

by 킹오황

최근에 평소 연락을 잘 안 하던 주무관님에게서 메신저가 왔습니다. 뭐 좀 물어봐도 되냐고요. 궁금한 게 있는데 저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자세히 잘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네요. 정말 기뻤습니다. 딱 제가 원하는 직장인의 모습이었거든요. 물어보면 대답을 잘해주는 사람.


전 신나서 폭풍같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주무관님이 묻는 거에 답을 했습니다. 주무관님이 감사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대화를 마무리짓기가 좀 아쉽더군요. 그래서 TMI(Too Much Information)이긴 하지만 조금 더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럴 경우엔 이렇고, 저럴 경우엔 저렇고 하면서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주무관님은 저보고 너무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했는데, 그 후로 연락이 없네요.




얼마 전에는 예전에 모셨던 국장님과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저랑 유튜브를 찍던 수습 사무관도 함께 했습니다. 국장님은 저보고 바쁘고 힘든 비서관 자리에 가서 고생이 많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맛있는 것도 사주셨죠.


수습 사무관님도 거들었습니다. 국장님 앞에서 저를 치켜세우려는 의도로 말을 하더군요. 제가 바쁜데도 불구하고 뭐든지 물어보면 항상 자세히 답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죠. 그 말을 들으신 국장님이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수습 사무관님께 한마디 하셨습니다.


"모르는 게 생기면 먼저 주변에 선배들이나 과장님에게 물어서 해결해야지. 비서관에게 바로 물어보면 어떻게 해? 국 내에서 알아봤는데도 답이 안 나오면 그제야 비서관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야. 비서관이 얼마나 바쁜 자리인데."


저는 평소에 저에게 부담 없이 질문을 해주는 수습 사무관님이 좋은데, 얼떨결에 저 때문에 수습 사무관님이 혼나는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급히 국장님께 해명을 했습니다. 제가 수습 사무관님의 멘토니깐 나에게는 언제든 물어보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물어보는 게 저에게도 많이 공부가 된다라고요.


나중에 식사 끝나고 사무관님께 메신저로 연락드렸습니다. 국장님 말씀 신경 쓰지 말고 궁금한 게 생기면 곧바로 나에게 물어봐라고요. 그렇지만 수습 사무관님도 예전에 비해 덜 물어보네요. ㅠㅠ




작년에 지자체 상담 업무를 할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과에서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로 불렸죠. 전화로 상담을 시작하면 몇십 분은 그냥 넘어갔거든요.


저는 답만 알려주는 게 싫었습니다. 지자체 공무원은 그래서 '되냐', '안 되냐'의 답만 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 그래도 담당자라면 왜 되는지 아니면 왜 안되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답부터 알려주기 전에 그 이유를 알려주었고, 그분이 제 말을 알아듣고 있는지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모두가 제 방식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전 이게 맞는 것 같아서 계속 고집했었죠.


어떤 지자체의 공무원은 이 자리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제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거의 매일같이 저에게만 전화하더군요. 저도 좋았습니다. 그분의 목소리에서 배움의 열정이 느껴졌고, 실제로 점점 성장하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두 분이 제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저에게 모 지자체 공무원이라고 말씀하시자마자 바로 매일 전화 오시던 그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너무 반가워했습니다. 목소리만 듣고는 사투리 때문인지 나이가 좀 있는 분인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엄청 젊은 새내기 공무원이었습니다. 옆에 계신 분은 그분의 상사인데, 업무를 하다가 잘 모르겠으면 저에게 물어보라 했다고 이실직고한다며, 너무 자주 연락 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고 사과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이 세종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온 김에 제 얼굴도 볼 겸 저희 사무실에도 들렀다고 하시더군요. 지역의 특산물로 빵을 몇 개 사 오셨는데, 제가 안 받으려고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받았습니다. 제가 안 받으면 그분들이 미안해서 이제 저에게 안 물어볼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 저의 대답해주고 싶은 욕구를 그분들이 많이 해소시켜 주셔서 사실 제가 뭘 사드렸어야 했는데 얻어만 먹고 그랬네요.



사진: 분임 동기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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