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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Feb 02. 2024

구름이

방울이의 세상은 느리다.

잔디가 산책을 할 때 세 시간 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걷기파였다면,

방울이는 세 시간 넘게 냄새만 맡을 수 있는 냄새파다.

그런 탓에 산책 중에 방울이는 새도, 고양이도, 다양한 물건들도 참 많이 발견한다.


 그 날도 방울이는 잔디밭에 풀 하나하나를 냄새맡고 있는데,

갑자기 코를 킁킁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이더니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한 곳을 바라봤다.


 방울이가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하얀 솜뭉치가 잔디로 우거진 곳에 숨어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연두색 하네스를 한 몰티즈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리드줄도, 보호자도 없었다.


 ”아가야, 엄마 잃어버렸어?“

걱정하며 다가갔는데 강아지가 무서웠는지 횡단보도를 건너서 도망가버렸다.

차가 쌩쌩 달리는 곳이라 다칠까봐 조마조마했다. 방울이랑 열심히 쫓아가봤지만 어찌나 빠른지 놓쳐버렸다.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걱정하며 방울이랑 산책하며 그 아이를 찾고 있는데

그 아이가 하고 있던 하네스와 세트인 것 같은 연두색 리드줄이 벤치에 묶여 있었다.

 이 산책길은 사람이 잘 안다니는 길이었는데, 이렇게 눈에 안띄는 곳의 벤치에 리드줄을 꽁꽁 묶어 놓았다.

어떻게 리드줄이 풀렸는지는 몰랐지만 더운 여름 날 물도 못마시고 돌아다닐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아이를 찾아야겠기에 중고마켓거래 어플과 지역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몇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려도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겠지?’ ‘몰티즈라 어떤 업자가 잡아가면 어쩌지?’ 걱정이 끝없이 밀려왔다.

 밤 9시 쯤이었나,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아이가 다행히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다녔고, 주민의 신고로 경비실에서 보호하고 있던 아이를 아파트 주민 분께서 발견하며 집에서 임시보호를 하고 계셨다.

이 분도 유기견 입양을 하셨던 분이라 낯선 곳에 홀로 있는 이 아이에게 마음이 가서 집으로 데려오셨다고 한다.


 다음날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내장칩도 없고 귀에는 진드기가 가득했다.

여러 어플에도 올려보고 동네에 전단지도 붙여봤지만 10일이 지나도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임시보호하시는 분과 상의하여 입양처를 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입양이라는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고, 입양자가 나타나더라도 아무데나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구름처럼 하얗고 보송보송하기 생긴 이 아이를 구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구름이는 다행히 임보처에서 적응을 잘 했지만, 계속 그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아는 사람이어야 구름이를 종종 살필 수 있을 것 같아서 학교 친구에게 부탁을 했는데 친구가 흔쾌히 구름이를 맡아주기로 했다.

 구름이는 사람 무릎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차도 폴짝폴짝 잘 올라탄다.

분명 가정집에서 잘 자란 느낌이다.

 

잘하는 것도 있는 반면에,사회성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

구름이는 분리불안이 있어서 집에 혼자 있으면 하울링을 끊임없이 한다.

또한 길에서 남자를 보면 남자를 향해 엄청 짖는다.

친구는 구름이를 위해 분리불안 교육도 하고, 일상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되도록 외출 시 구름이와 함께 다닐 수 있는 곳을 다니며 구름이가 여러 환경을 경험하도록 해주었다.


한동안 구름이를 위한 보호자를 찾다가

역시나 임보는 임시보호가 아닌 임종때까지 보호라고 했던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던 친구는 결국 본인이 구름이를 입양했다.

구름이는 누구보다 행복한 견생을 보내고 있다.

사랑받기 좋아하는 구름이는 이곳 저곳에서 털복숭이 매력을 뽐내며 사랑둥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방울이의 느린 세상 덕에 름이는 가족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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