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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Feb 26. 2024

생츄어리(Sanctuary): 아픔이 있는 동물들

2023년, 충남 당진의 곰 사육 농장에서 곰 한 마리가 탈출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뜬 장을 벗어나 흙을 밟아봤지만, 이내 사살당했다.

그렇게 짧은 자유는 끝났다.


이 곰은 웅담 채취를 위해 키워진 곰이다.

1980년대 웅담이 농가 수입원으로 각광받으며 개인이 곰을 수입하여 철창에서 사육하기 시작했다.

웅담을 채취하기 위해 곰의 쓸개에 관을 박고, 매일 쓸개즙을 받아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며 우리의 인식은 개선되었고, 이 일이 매우 끔찍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건강은 규칙적인 식습관과 운동, 정제된 비타민, 영양제 정도로 보충하는 것이지 웅담을 먹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간 건강 좋아졌으면 세상에 간 문제 있는 사람도 없겠지?


이제 예전보다 소득이 좋아지지 않자, 곰 농장주들은 곰을 그대로 가둬둔 채 떠났다.

그 철창 속에서 그나마 주던 음식물 쓰레기도 주지 않아 곰들은 굶주렸다.

관리가 소홀해지자, 곰들이 탈출하는 문제가 거의 매년 발생하기 시작했다.

탈출의 끝은 항상 사살이었다.

왜 우리에겐 생명을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는 없는 걸까?



2022년 3월, 국내 22마리의 사육곰이 미국 생츄어리에 발을 딛게 되었다.

강원도에서 인천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또 그곳에서 차를 타고 긴 여정의 끝에 도착했다.

그곳엔 선천적으로 눈이 안보이는 글로리아와 앞다리와 뒷다리가 하나씩 절단된 오스카도 포함되어 있다.

이 생츄어리에선 각자 이름이 있고, 하나의 상품이 아닌 각자 개성이 있는 존재로 살아간다.



생츄어리는 무엇일까?

1986년 죽은 양들 무더기 속에서 약하다고 버려진 양 'Hilda'를 발견하게 된 ’진 바우어‘가 동물들이 착취당하지 않고, 자유롭고 편하게 살 수있는 안식처를 고안해낸 개념이다.

이곳은 글로리아 같은 야생동물을 위한 공간과 힐다 같은 가축동물을 위한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얼핏 보면 동물들이 모여 있으니 동물원같아 보일 수 있으나 이 곳에선 먹이주기 체험, 올라타기 체험 등은 없다.

이 동물들은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습성대로, 자신의 수명대로 살아가는 곳이다.


여행을 다녀보면 생츄어리가 존재하는 나라들이 있다.

태국엔 코끼리 생츄어리, 호주엔 코알라 생츄어리, 최근 <태계일주>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마다가스카르의 알락꼬리원숭이 생츄어리 등, 아이러니하게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동물들의 생츄어리가 있다.

즉, 그만큼 많이 착취당했다는 의미이다.



생츄어리는 왜 필요할까?

동물들이 야생에서 온 만큼 갇혀있던 동물을 다시 야생으로 방사하면 되면 생츄어리를 위한 공간을 확보할 필요도 없고 간단히 해결될 문제 아닌가?


이건 아주 큰 착각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인간의 손에 사육되었기 때문에 야생에 다시 적응하는 것은 힘들다.

야생동물이라고 착취당했던 동물에게 자유를 주겠다며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또 다른 학대이다.



작년에도 또 한 번 야생동물구조센터를 방문했는데, 그곳에 반려조인 ‘유유’가 발목에 리쉬를 하고 있었다.

유유는 황조롱이인데, 끈끈이 같은 것에 날개가 붙어서 날개 영구장애가 생겨 날지못하는 새가 되었다.

이런 아이를 야생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센터의 반려조로, 마스코트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센터가 유유에겐 정말 좁게 느껴질 것이다.

하늘을 날며 자유롭게 사냥하던 맹금류인데, 열 평 남짓한 실내에서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이런 야생동물들을 위해서라도 생츄어리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에는 장애가 생긴 야생동물이 살아갈 공간이 없다.

유유는 운이 좋아서 센터에서 살 수 있지만, 대부분은 센터에서 모두 키울 수는 없기 때문에 안락사된다.

이들이 생츄어리라는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낭비할 일은 줄어들 것이다.



2026년, 야생생물법에 의해 사육곰 산업은 종식된다.

지리산 자락인 구례 등지에 곰들을 위한 보호시설이 확충된다고 한다.

청주시 산하의 공영 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을 생츄어리로 바꾸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동물을 신기해한다.

하다못해 등산을 하다가도 다람쥐나 청솔모를 만나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다.

아마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앞으로 동물원이 아닌 생츄어리로 나아가야 한다.

동물들을 직접 만져보려는 욕심은 버리고, 자연을 감상하듯 그들의 습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아직도 한국에는 300마리가 넘는 사육곰이 있다.




* 사진: 날개의 영구장애로 인해 센터의 반려새가 된 유유(눈 밑의 자국이 눈물자국 같아 지어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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