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관찰일지

by 말랭자매

잔디의 발은 장난꾸러기 발이다. 아기 강아지들이 실이나 공같이 생긴 걸 좋아하는데 잔디는 내 머리카락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잔디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입에 넣어보기 때문에 나는 강제로 부지런한 청소쟁이가 되었다.


잔디의 이마는 주로 나에게 붙어 있다. 이마를 내 허벅지에 붙이고 자는 것도 좋아하고, 머리맡에서 같이 잠드는 것도 좋아한다. 잔디가 옆에 있으면 잔디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꼼지락거리던 잔디가 잠이 들면 새근새근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잔디의 부드러운 배가 내 팔에 닿았다 떨어졌다 한다.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순간이다.


잔디의 입은 산책할 때 솔방울을 물고 있다. 산책길에 솔방울이 보이면 나한테 발로 차 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내가 솔방울을 발로 차면 공놀이하듯이 솔방울을 쫓아 뛰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집까지 가져오곤 한다.


여담이지만, 잔디가 솔방울을 하도 좋아해서 학교를 졸업하고 여유가 생기고, 봉사활동을 하다가 마음이 특별하게 가는 아이가 있어 잔디 동생으로 맞이하면 솔이, 방울이로 이름을 짓기로 결심했다.


잔디의 눈은 항상 나를 보고 있다.

잔디를 돌봐주는 사람이 잔디 옆에 있어도 잠깐 내가 자리를 비우면 멀리서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사라진 방향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한참 뒤에나 안 사실이지만 집에서 나를 기다릴 때도 내가 열고 나간 현관문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잔디였다.

잔디의 꼬리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갑자기 거실에 있는 나에게 와서 꼬리를 흔들면 130%의 확률로 패드 위에 배변을 본 것이다. 내가 패드 위에 배변한 것을 확인하고 간식을 주기 때문에 이 귀여운 습관을 만드는 데에는 내가 일조했다.


마지막으로 잔디는 내 옆에서 자는 척을 한다. 아기 때는 나한테 안겨서 잠만 잘자더니 이제는 좀 컸다고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침대 위에 올라와서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잠이 든 것 같으면 바닥에 있는 잔디 침대로 내려간다. 그래서 밤새 각자 편하게 자다가 내가 깰 때쯤 마치 내 옆에서 밤새 잔 것처럼 잔디가 옆에 와있다. 귀여운 녀석.


한 강아지의 세상이 된다는 것은 뭉클한 일이다. 집을 나섰다가 지갑을 놓고 와서 잠깐 집에 들어가도 꼬리가 떨어질 듯이 흔들면서 나를 반겨주고, 집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눈빛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면 잔디는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만 바라보는 존재가 생겨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스며들었고, 서로가 서로의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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