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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러너 Jun 11. 2019

42.195 마이런

앞으로 70일 / 여름 달리기 시작하다

3월 어느 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사고를 쳤다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보자




지난해 겨우 10km를 다섯 번 나갔었고 이후 겨울엔 한 번도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에 처음 나갔을 때도 내 한계는 10km까지 라고 생각했고 그 이상을 달려보고 싶은 욕심이나 바람이 없었다


달리는 동안의 지루함을 이겨낼 자신도 없었고 장거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컸다

그런 내가 겁 없이 떡하니 풀코스 참가신청을 하다니 잠깐 미쳤었던 것은 아닐까

게다가 첫 모험으로는 장소가 대담했다



카이도 마라톤 / 北海道マラソン2019



해외의 마라톤 대회, 8월 삿포로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덜컥 신청을 해버렸다

겁 없는 줄은 알았지만 정말 지를 땐 앞뒤 없이 지르는구나

새삼 내 배짱에 내가 놀랐다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이제부터 똑바로 하자


마음으로 10km를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무덥고 습도 높은 일본이지만 삿포로는 상대적으로 서늘한 편이라 여름에도 마라톤 대회가 열리나 보다 라고 납득은 가지만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다

대회가 열리기까지 여섯 달이 채 안 남았는데 그사이 완주까지 나를 단련시킬 수 있을까

준비 방법을 두 갈래로 두고 고민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할 때 참고하는 훈련방법을 토대로 연습한다

6개월은 짧은 시간이 아니니 착실히 다진다면 완주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연습만으로는 부족하다

10km와 하프마라톤 달리기가 다르고 풀코스 마라톤의 달리기는 그것과 또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연습을 열심히 한다 한들 연습의 경험이 실제 대회와 같을 수는 없다

실전 없이 대회에 나갔다가 충격을 받는다거나 심적인 공포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떡하지

비싼 비용을 치르고 해외까지 가서 중도포기를 할 수는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번엔 대회 전에 나갈 수 있는 국내 풀코스 마라톤을 찾기 시작했다


경험을 해보자


걸어 들어와도 괜찮으니 42.195라는 거리를 먼저 체험하고 그 느낌을 발바닥에 새겨주자



그렇게 나가게 됐던 제주 마라톤

마침 제주 마라톤은 6시간 제한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부담을 줄일 수 있기도 했다

10km에서 바로 풀코스로 갈 수는 없으니 중간에 하프마라톤에도 두 번 나갔는데 이 대회 조차도 내겐 첫 하프였다

처음이라 버겁기는 했지만 하프는 뛸만했다

썩 좋은 기록은 아니더라도 두 번째 대회에선 2시간 2분대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다만 달린 후의 피로감과 몸상태는 확실히 10km 때와 달랐다

래서 대회전에 안전과 건강한 완주를 빌어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땐 내 발로 걸어서 피니시라인 통과 후 대회장도 어슬렁거리고 집에도 멀쩡히 걸어 들어갔었지만 풀코스를 뛴 후에는 부축을 받지 않고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마라톤 경험담에서 들을 수 있는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간신히 들어왔다'라는 표현이 이런 거였어


첫 풀코스는 공포와 포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지 않는 그 기분은 쫓기는 꿈을 꾸는데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인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던 건 그때 포기해버리면 다음 대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서였다

다음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제주에서의 경험은 충격 그 자체였고 마지못해 버틴끝에 5시간 5분대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할 수 있었다

5시간 달렸을 뿐인데 5년은 폭삭 삭아버린 몰골로 돌아왔다

기록은 별 볼 일 없어도 정말 뛰기를, 완주하기를 잘했단 생각이 든다


평생 몰랐을 그 경험을 품고 1주일 뒤 다시 풀코스 대회에 나섰다

그렇게 연속으로 뛰면 무리가 된다는 걸 몰랐을 때 별생각 없이 신청했던 대회였다

대회 직전의 주중 화요일까진 안 나갈까 생각했었고 목요일에는 나가긴 나가되 스스로 하프 정도의 거리만 뛰고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었다

다만 대회 당일 초반 컨디션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하프와 풀코스의 주로가 갈리는 갈림길에서 나름 승부수를 띄워 풀코스 주로로 뛰어들었다

20km 지점을 지날 무렵 뒤늦게 단 한번 완주를 했다고 갑자기 실력이 좋아질 리 없다는 각성이 뚜렷하게 느껴졌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고

지난주의 경험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며 거리를 줄여나가려 최선을 다했지만 내 다리는 마음 같지 않아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5시간 6분 피니시 라인 통과

그렇게 두 번째 풀코스는 참패 속의 완주로 모양새만 갖춰 마무리됐다



두 번의 대회 참가로 얻은 교훈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먼저 경험을 건졌지 않은가

무려 42km다

그 거리를 두 번 뛰었다는 작은 자부심이 남았다

첫 대회를 뛰었기 때문에 두 번째 대회를 견뎌낼 수 있었다

경험을 장착했으니 이제 연습을 통해 제대로 뛰는 일만 남았다







이 대회의 목표는 4시간 41분으로 정했다

이 어정쩡한 시간은 좋아하는 작가가 마라톤에서 기분 좋게 골인했다고 본인의 책에서 밝혔던 기록이다

정말 기분 좋게 들어올 수 있는지 내가 한 번 뛰어보기로 했다

삿포로까지 가서 헥헥대며 꼴찌로 들어오는 외국인 주자의 모습은 연출하고 싶지 않다

제주에 다녀와서 "당분간 제주 해변 얘기는 꺼내지도 말자"라고 학을 떼던 그 기분을 삿포로에 덮어 씌우고 싶지도

않다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꼴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 후 4시간 41분이라는 기록을 확인하고 "아 기분 좋다"라고 말하며 웃고 싶다

그 모습을 끊임없이 생각 속에 그려 넣으며 연습에 몰두해보겠다

완성된 8월의 마라톤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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