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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러너 Jul 10. 2019

42.195 마이런

최악의 달리기 / 2019 나이트 레이스


마음먹었을 때 진작에 그만 뛰었어야 했어


달리는 내내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여름 달리기의 청량하고 상큼한 느낌은 역시 만화에서나 가능한 설정이란 사실을 또 이렇게 체험으로 터득한다

36.1도의 폭염을 기록했던 지난 토요일

7월 초순의 기온으로는 80년 만의 기록이었다는 하필 이 날 달리기를 위해 뚝섬 한강공원에 발을 디뎠다

나름 한 달만의 마라톤 대회 참가였지만 자신만만했던 마음과 달리 하프 구간 참가 이후 최악의 달리기를 펼쳤던 대참사의 기록



2019 나이트 레이스



풀코스 마라톤에서 5시간 6분을 기록한 이후 한 달간 설렁설렁 입맛에 맞는 정도의 거리를 뛰고 싶은 만큼만 뛰며 지냈다

무리하지 않는 달리기란 얼마나 상쾌한지

적은 거리라도 꾸준히 달리고 있다는 정신적 만족감까지 더해 내가 부지런히 운동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었던 기간이기도 했다

그저 안 하는 것보단 나은 정도의 움직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실제 대회에 나서 달리는 중 5km도 못가 진이 빠져 헐떡이는 방전된 자신에게 충격받아 기록과 함께 대회가 열렸던 청담대교 아래 한강에 코를 박고 사라지고 싶을 만큼 짜증이 차올랐었다

이번 달리기를 망친 이유는 단 하나


그동안 내가 자신의 엄살을 너무 받아줬다


더위는 핑계다

마음이 있었다면 두 시간의 더위쯤은 견딜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저녁 달리기가 아닌가

그저 스스로 자신에게 져줬다 생각하니 한심할 따름이다







2019 NIGHT RACE


저녁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처음 참가했다

 여름이다 보니 대회가 자주 열리지도 않고 그간 운동하러 다녔던 피트니스센터는 공사 중이라 동네의 공원에서 달리는 정도로만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 8월 말에 참가 예정인 풀코스 마라톤에 대한 걱정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 와중에 점검차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던 대회였다

 마지막 마라톤에서 하프 코스의 거리만큼은 거뜬히 소화를 하기도 했었고 비록 10km 정도의 거리지만 연습 달리기의 기록도 꾸준히 나오고 있어 어느 정도 대회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코스가 단순한 데다 한강 공원의 달리기라면 올해만 벌써 세 번째인데 뭐 별일 있겠나라고 건방을 떨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까불다 호되게 당했다




 6시 정각에 하프 부분의 출발로 대회가 시작됐다

출발 후 초반에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공원길이라 전체적으로 달리기에 적당했다

최근 연습 달리기의 기록이 좋아 내심 1시간 50분대를 노리며 의욕 있게 달려 나갔는데 의욕만 앞섰던 꿈일 뿐 서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달리다 보면 얼마든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이날은 정도가 심해 3km를 지났을 즈음엔 열이 피부를 뚫고 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화끈거리더니 이때다 싶었는지 편두통까지 올라와 얼굴의 반쪽이 빳빳하게 마비된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제 겨우 발을 뗀 거나 다름없는데

5km를 지나면서부턴 남은 거리가 의식되며 부담이 마음을 억눌러왔다

도저히 안 되겠다, 포기하자

되돌아가기보단 적당한 구간에서 빠져 그대로 가버리려 했다

강동 암사대교를 지나면서 이탈하기로 마음먹고 그때까지만 버텨보자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

조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천천히 가자

계속 달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참을만했다

저녁 강바람도 서늘해지고 한고비를 넘겼다 싶은 생각을 하며 8km 지점을 통과하는데 견딜만하다 싶으니 변덕이 일어 그냥 달리던 걷던 되돌아가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의 절대 못 달리겠다는 힘든 생각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할 수 있는 걸 못한다고 퍼져버렸나 싶은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나저나 앞에서 까먹은 시간이 커 달리자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한들 컷오프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 아닌가

아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울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으며 기록 같은 배부른 소리는 걷어내고 두 시간 반안에 들어가 보기나 하자라는 쪽으로 계획을 정리했다

되돌아오는 길의 한강변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날 저녁 숨 쉬며 집어삼킨 날벌레들이 목구멍에 집이라도 지은 듯 칼칼한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포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실패에서 오는 후회의 무게와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지못해 계속 달리면서 느꼈던 고통 중 어느 쪽의 감정이 더 무거웠을까

이날은 2시간 22분이라는 턱걸이 기록으로 간신히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솔직히 눈 앞 저만치에 피니시 라인이 보이는데도 발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심하고 또 한심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민망한 기록으로 돌아온 나를 반기는 제공  간식들

꽁꽁 언 스크루바는 대체 어느 분의 아이디어십니까

진심 이 세상의 달콤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든 차가운 미숫가루도 감사히 받아마셨다

기록은 거지같아도 입맛은 살아서 주어지는 모든 달고 차가운 맛있는 간식들을 받아 챙겼다

먹을 걸 다 챙기고 나니 그제야 완주메달 생각이 났다

메달 받으러 가자








돌아온 날은 분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대체 어떤 정신머리로 대회에 임했길래 중간에 빠져 집에 돌아가겠단 생각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능력으로 동네에서 마음 내키는 만큼 달리며 운동한다고 폼을 잡았구먼


달리면서 스쳤던 여성 러너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비슷하게 달리며 여러 번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이 분은 작은 보폭이었지만 끝까지 달려 완주를 해낸 분이셨는데 고통스러워하는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달리는 내 귀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래 그게 운동이고 달리기지

 좀 뛰다 힘들면 걷고 힘드니 못 뛰겠고 못 뛰겠으니 걷겠다는 마음으로 몇 미터나 갈 수 있겠습니까

그 한계를 이겨나가는 과정이 마라톤 안에 있다는 것을 잠시 까먹고 달리는 행위 자체에 취해 있었단 반성이 들었다 

그러지 말자


대회에서 얻은 경각심과 달리는 방법에 대한 마음가짐 마음만으로도 참가 의의를 두기에 충분했던 좋은 대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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