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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러너 Jul 10. 2019

42.195 마이런

복수런, 당한 만큼 되갚아준다

나이트 레이스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어 다시 운동화 끈 고쳐 묶고 운동 코스에 나섰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되뇌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운동은 원래 힘들다

힘들라고 하는 게 운동이다

달리기는 쉽지 않은 운동이다

쉽지 않으니 보람도 있는 거다



천천히 사뿐사뿐 발을 움직이며 다리를 풀었다

가볍게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편의점 가듯 달리며 걸음이 편안해지길 기다려준다

딱 2km만 기다려주면 그다음부턴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오히려 신호등이 있는 길거리가 첫 2km엔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km를 지나면서 해안 공원에 접어든다


한 번 작정하고 뛰어보자


여정의 시작이다



기초 체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이런 타입인 건지 모르겠지만 컨디션 편차가 너무 심하다

좋은 날은 피로를 모르고 달리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온몸을 담근 듯 피곤에 절어 달리면서 졸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피로감을 느끼곤 한다


어쨌든 이 날은 컨디션이 꽤 좋았던 날로 달리기를 마무리한 후에도 여운이 남아 더 뛰고 싶다는 생각이 끓어 넘쳤기도 했다


기록을 보면 미미한 출발을 거쳐 조금씩 스피드가 올라가다 6~7km를 지나는 지점에서 본격 궤도에 올라 이후 꾸준한 페이스가 유지됐다

집중력이 뒷받침되는 날이라면 하프에선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생각으로 덤볐던 지난 대회에서 큰 참패를 맛봤었다

기복이 크다는 건 역시 기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상상을 해봤다

어떤 선이 있다, 그런데 이 선이 기분 좋은 날엔 보이고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 이하의 날에는 있는지 없는지 의식도 안된다면 적어도 달리기를 하는 날에는 이 선이 의식되는 출발선에 서고 싶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상상

누구나 자신만의 선, 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난 그게 달리기일 뿐이다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그저 몸으로 내 성질 껏 달려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예뻐 죽을 것 같다


경쟁자도 도로의 높낮이도 없는 평온한 상태의 연습 달리기는 좋은 기록을 냈다

기온은 조금 높았지만 그래 봤자 저녁 바람 아래의 선선한 조건이었다




7/8 월요일의 달리기



솔직히 만족스러웠다

더 달리고 싶었지만 길이 여기에서 끝났다

열기가 남아 식히느라 뛰어왔던 길을 좀 더 가볍게 달리듯 걸으며 이날의 달리기와 달리던 중의 발바닥 감각, 종이리와 허벅지의 느낌들을 쉼 없이 되새겼다

기운으로만 보면 최상의 컨디션이라는 조건 아래 하프까지는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 초보 마라톤에 관한 글을 읽다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메모를 해뒀던 내용이 있는데 그 글에 풀코스를 뛸 때 전체 거리를 삼등분 해 계획을 세우라는 조언이 담겨있었다

부족한 실력에 풀코스까지 경험을 했던 내가 거리에 대한 부담을 지우기에 좋은 내용이라 생각했다

나이트 레이스 이후 거리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면 남은 거리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내가 달려온 거리만 생각하고 남은 거리는 절대 의식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보려 한다

어느 만큼을 지나왔는지가 중요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면 남은 거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하지 말자

인생과 같다

그냥 가자


나이트 레이스 후 컨디션이 좋았던 첫 연습 달리기에서 이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하느라 거리가 먼 줄도 모르고 달렸다

돌아와 운동화를 벗는 순간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가에 대한 현타가 왔다

발톱은 빠지기 직전이고 피가 철철 흘러 양말을 적셨다

양쪽 발가락이 엄지발톱을 제외하고 한 번씩 왔다 가고 있는 중이라 샌들을 못 신는다

하지만 정말 뿌듯하다

이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스며들듯 중장거리 러너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젠 멈출 수가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달리는 즐거움을 알았고 진지한 생활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는 거지




너와 나, 갈 수 있는 끝까지 가 보자




7/10 수요일의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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