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집을 나선다.
뛰기 좋은 가벼운 옷차림과 낡은 러닝화를 신고.
‘하나 사야 하는데...’
십오 분쯤 걸으면 공원에 도착한다.
그녀는 공원 입구를 지나 익숙하게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가볍게 뛰기 시작한다.
일곱 시 반이 되기 전이지만 사람들이 꽤 많다.
출근 전 반려견과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매일 만나는 흰 털을 가진 강아지에게 눈짓으로 인사한다.
격하게 인사하긴 조금 창피하니까.
무선 이어폰을 꽂고 땀을 흘리며 조깅하는 사람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며 피부를 스치는 바람을 즐긴다.
수많은 사람들 중 그녀가 찾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오 분 정도 뛰면 나타나는 커다란 나무에서 항상 마주치는 한 남자.
그는 항상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며 강을 바라본다.
꽤 일찍부터 조깅한 것인지 얼굴은 젖어있으며 숨을 몰아쉰다.
사실 그녀는 그의 외적인 모습에 넘어갔다.
자길 보라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강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그와 매일 같이 마주친지는 이 주가 지났다.
제발 운동을 하라는 그녀의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아침 조깅을 시작했지만 어느새 그녀는 즐기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커다란 나무 밑 그.
아직 앉아서 쉴 만큼 숨이 차오르지 않지만 그녀도 그 옆의 벤치에 앉는다.
괜한 헛기침을 하며.
처음엔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었고 언제는 말을 걸어보고 싶었고 오늘은 왠지 그가 인사를 할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평범하디 평범한 인사였지만 그녀에겐 낡은 러닝화가 창피해 질만큼 압도적인 말이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꽤 상상하곤 했다.
상상보다 더 멋진 목소리였다.
그녀도 인사를 건넸지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가 왜 미리 인사를 연습하지 않았을까 자책을 하던 중,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항상 여기서 마주치네요.”
그도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갑자기 운명을 만난듯한 생각에 사로잡혀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끌어내렸다.
“그러게요. 부지런하시네요, 일찍부터 나오시고.”
“제가 워낙 아침잠이 없어서요.”
몸을 돌려 강을 바라보는 그를 그녀는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그녀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매일 마주치는데 오며 가며 인사나 해요, 우리.”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의 모습이 아주 작아지고 나서야 그녀는 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이제 난 그 사람이랑 인사하는 사이야.’
오늘은 유독 벤치의 나뭇결이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녀는 이제 그의 나이, 직업 등 꽤 많은 걸 알아냈다.
그에 대한 정보와 그녀의 두근거림은 반비례 관계였다.
더 많은 걸 알수록 더욱 두근거렸고 그녀는 이 두근거림을 즐겼다.
오늘도 그녀는 7시에 집을 나섰고 새로운 러닝화를 신었다.
그가 신는 신발과 같은 브랜드였다.
대화 소재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늘 그랬듯 입구를 지나 오른쪽으로 뛰었고 나무 밑 벤치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그는 이어폰을 빼고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그의 옆에 앉아 괜히 신발을 보여주려 발을 쭉 뻗고 기지개를 켰다.
괜히 발도 흔들어 보이고.
“어? 신발 새로 사셨나 봐요.”
하늘은 그녀의 편임을 입증하듯 모든 건 그녀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아, 네. 여기 신발이 제일 좋더라고요.”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녀는 일부러 그와 같은 신발을 신고 싶었을 뿐.
“저도 이 브랜드 제일 좋아하는데. 혹시 이번에 나온 신상 보셨어요?”
이건 계획에 없는 질문이다.
“아... 아니요, 어떤 건데요?”
그는 검은색 트랙탑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더 가까이 앉았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가까워진 거리에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서.
오늘 뿌린 향수가 너무 독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보여드릴게요, 잠시만요.”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핸드폰 잠금화면을 보았다.
기분 좋게 흔들거리던 그녀의 발은 약간의 흙먼지를 내며 멈췄다.
화면에는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며 미소 짓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누가 봐도 ‘그’였다.
“이거예요. 멋있지 않나요? 살까 말까를 일주일째 고민 중이에요.”
그는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네요. 저도 그걸 살 걸 그랬네요.”
사실 그녀는 신상이라는 신발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지 않았다. 기계적인 대답이었을 뿐.
그녀의 계획에 그의 애인은 없었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여자 친구분이신가 봐요.”
“네? 아, 네. 맞아요.”
그는 쑥스러운 듯이 다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만난 지 오래되셨어요?”
그녀는 목소리에 괜한 화가 묻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뇨. 일주일 정도 됐어요.”
‘아...’
그와 그녀 사이엔 찬 기운을 가득 머금은 바람만이 불었고 그는 시계를 보더니 일어났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그럼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는 잠금 화면에서 보이던 미소를 보이며 멀어져 갔고 그녀는 한동안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직 얼굴만 아는 그의 이름 모를 애인에게 짙은 질투와 부러움을 느꼈다.
조금 더 용기 냈더라면 지금쯤 그의 잠금 화면에는 그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함께.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새로 산 러닝화가 보였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한 달 동안 뭘 한 건지.’
그녀는 내일부터 아침엔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벤치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유독 벤치의 나뭇결이 거칠어 보였다.
사람은 생각보다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다.
다음날, 역시나 여섯 시 반이 되자 그녀는 저절로 눈이 떠졌다.
잠이나 자자며 눈을 다시 감아도 소용없었다.
결국 오늘도 그녀는 아침 일곱 시에 집을 나섰다.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오른쪽을 한 번 바라봤다.
눈을 네 번 정도 깜빡였을까.
그녀는 고민 없이 왼쪽을 향해 달렸다.
어제 신었던 러닝화를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