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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Mar 27. 2021

내일을 업데이트 중

03.27 새벽 두 시 이십칠 분

마음이 괴롭다.


한계가 올 때마다 주먹을 꽉 쥐며 참으면 그 두 배로 나에게 성장이 온다고 믿었다.


언젠간 을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그러나 또다시 내 키를 넘는 벽을 마주친 오늘.


나의 에너지를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 해소하고 싶어 졌다.


당분간 매일매일 단 한 글자라도 글을 쓰려한다.


며칠 동안 쓰겠다는 사슬도 내게 매어 두지 않겠다.


정말 당분간. 아주 당분간.


그 이야기를 아주 쉽고 이기적이게 '나'로 시작한다.


내일을 업데이트 중

종종 초등학생 때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곤 한다.


이건 초등학교 1학년 7월 29일 날씨가 맑았던 날의 일기이다.


“방학 동안에 언니에게 리코더를 배우기로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계속하다 보니까 쉬웠다.


배운 것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웠다.


내일은 무엇을 배울까? 궁금하다.


구멍을 잘 막고 약하게 불어야 한다.”


내일은 리코더로 무엇을 배울지, 어떤 노래를 연주할 수 있을지


예쁜 기대로 하루를 가득히 채우고 약간은 잠을 설칠 정도의 두근거림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8살의 여름.


26살의 지금은 어떠한가.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까. 누구를 만날까. 하는 기대는 전혀 없다.


무엇을 배울까 하는 기대는 더더욱.


씁쓸하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저 지금 당장 드는 생각은


'서서히 두꺼운 카디건이 더워지는 날이지만 아직 나는 보라색 두꺼운 카디건이 입고 싶다.'


이것뿐이다.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직장으로 도착해 똑같은 일과를 보내고 똑같은 버스를 타고 돌아와 똑같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금과 같은 시국에 직장이 있고 매일 출근할 곳이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배부른 투정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마치 내 두 발로 절대 내려오지 못할 쳇바퀴에 스스로 올라탄 기분이다.


속 시원히 여기서 내려와 쉰다 해도 이틀이면 다시 올라타고 싶을 게 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상을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또 하루가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로 왔다 갔다, 변화로 가득한 건 싫다.


그래,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이렇게 앞뒤 대책 없는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하려 한다.


내일에 대한 기대.


8살의 여름, 내일은 언니에게 무엇을 배울지 기대했던 그때로 돌아가려 한다.


내일은 무슨 사진을 찍을까.


내일은 무슨 감정을 파고들어 볼까.


내일은 어떤 가사를 써볼까.


내일은 어떤 비유를 찾아볼까.


내일은 어떤 글을 쓸까.


쓰다 보니 사놓고 쓰지 않았던 회색 블루투스 키보드 소리가 좋다.


타닥타닥.


내일도 타닥타닥 소리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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